이성무 前 국사편찬위원장 서당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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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계화 시대에는 영어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문도 중요합니다. 국내 유수한 기업들이 신입 사원을 뽑는 데 한문 시험도 볼 계획이라니 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성무(67)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한문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는 올해 초 개인 연구소인 한국역사문화연구원의 부설 기관으로 '성고서당(省皐書堂)'을 열었다.

1981년부터 재직해 왔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직에서 지난해 정년퇴임한 뒤 '서당 훈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서당의 크기는 55평으로 40여명이 앉아 공부할 수 있는 규모다.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로 꼽히는 강남역 부근에 자리잡았지만 강의 방식은 옛날 서당 방식을 고수한다.

예를 들어 논어 강독이라면 원전과 주자(朱子)의 주석에 한글 토를 달아 크게 소리내어 읽는 방식이다.

"정년퇴임 후 하고 싶었던 개인적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북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문 강좌는 노상복(68).노홍두(53) 두 강사가 맡는다. 70년대 초반 경남 산청군에 있는 고(故) 김황 선생의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부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초급(1년) 과정의 교재는 '명심보감''격몽요결'이고, 중급(2년) 과정의 교재는 '논어''맹자''대학''중용'이다.

이성무 교수는 한문 대신 '역사 강좌'를 맡았다. 이 역시 '정년퇴임 후 역사 대중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년 이후에도 20~30년은 더 살아야 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해야 할 일을 모색하면서, 역사와 문화 강좌를 통해 도덕이 무너져 내리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서구식 근대화 과정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인간성이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져 사회가 혼탁한 모습을 보인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전통적 도덕교육이 유효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이 많은 세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젊은이들과 대립.갈등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구태의연한 냉전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사고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서당 수강료는 매 학기(3개월간 주 2회) 30만원이며, 모집인원은 초급.중급 각 40명이다. 02-585-7155.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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