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근대화 100년’ 낡은 도그마를 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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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박노자·허동현 지음, 푸른역사
360쪽, 1만5000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와 허동현 경희대 교수. 2003년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이 『우리 역사 최전선』(2003),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2005)에 이어 이번 책으로 일단락됐다. 한 세기가 넘는 전 민족 총력전의 ‘근대화 세월’을 성찰한 3부작인 셈이다.

박 교수는 ‘진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에둘러 말할 것 없이 확고한 사회주의자이며, 허 교수는 ‘건강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균형 잡힌 시각의 학자다. 시각이 다른 이 두 학자의 목소리는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주로 상대의 빈틈을 지적한다.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지적 생산성이 오랜 논쟁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책의 서문에서 ‘총체적, 다성적(多聲的) 역사를 위하여’라고 썼다. 하나의 목소리만 고집하는 ‘길들이기’, 두 개의 목소리만 충돌하는 ‘편가르기’를 넘어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다성적(多聲的) 역사’를 제안한 것이다.

이광수(1892~1950)에 대한 접근도 그렇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친일과 매국의 잣대만 들이대서는 ‘결과로서의 역사’만을 암기할 뿐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이광수는 말한다. “그대들이 피를 흘린 뒤에도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좋은 것을 아니 주거든, 내가 내 피를 흘려 싸우마.” 조선 청년을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내몬 이 ‘지식인’의 발언은 위선이나 순진함 정도로 평가절하해도 되겠다. 하지만 여기엔 좀 더 커다란 사상적 공백이 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지적이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물신화, 개인의 존엄과 권리라는 자유주의적 사상의 결핍 등이다.

근대화 100년의 세월 동안 우리가 배운 것이 ‘민족주의’나 ‘부국강병’뿐이었다면 이광수의 사상적 공백은 언젠가 또다시 이 사회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겠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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