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등진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 죽어서도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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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마를렌 디트리히 (1904~1992) .장년층 영화팬들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신비의 여인이다.

늘씬한 각선미의 '위험한 여인' 이 뿜어내는 마력,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사생활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디트리히지만 정작 고국인 독일에서는 고향을 등졌다는 이유로 한때 출연작이 상영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92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지 5년이 지난 지금 독일 베를린에서는 또한번 디트리히의 이름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많은 독일인들이 30년대에 조국을 저버리고 할리우드의 화려한 생활을 택한 그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 디트리히가 고향인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베를린시민들은 그녀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야유를 보냈다.

이번 논쟁의 발단은 베를린의 영화제작자인 아르투르 브라우너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그는 디트리히의 고향인 베를린의 중심가 쇠네베르크에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고 또 브란덴부르크문에 그녀를 추모하는 동상을 세우자고 한 것. 그러나 쇠네베르크 구의회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 조성안을 부결했다.

상정된 안은 쇠네베르크의 빈민지역인 템펠호퍼 거리를 디트리히 거리로 바꾸자는 것이었지만 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냐" 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후보 거리들이 계속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구의회의 좌파의원들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카이저 - 빌헬름 광장을 마를렌 디트리히 광장으로 삼는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카이저같이 존경받는 사람의 이름을 없애버릴 수있느냐는 우파 구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이에 대해 브라우너는 미국영화산업주간지 '버라이어티' 와의 인터뷰에서 "마를렌 디트리히가 마치 공처럼 여기저기 던져지고 있는 상황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면서 "그녀는 아직까지도 여기에서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는 베를린에 아직도 나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라고 우려했다.

독일에서 조연급 여배우로 출발한 디트리히는 1930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프 폰 슈테른베르크감독을 만나 '블루 앤젤' 에 출연함으로써 스타로 탄생했다.

그녀는 폰 슈테른베르크감독을 따라 할리우드로 건너가 화려한 스타덤에 올랐으며 39년에는 미국시민권을 획득했다.

2차대전때 히틀러가 독일로 돌아와 친 나치주의 영화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단호히 거절하고 오히려 유럽지역에 참전중인 미국병사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나선 일화는 유명하다.

브라우너는 "마를렌은 나치즘 아래서 자신을 지킨 유일한 독일인 스타" 라고 말했다.

공식석상에 일체 나타나지 않은 채 파리에서 조용하고 신비로운 죽음을 맞이한 디트리히가 고향에 묻어달라고 한 유언도 한때 베를린시민들의 반발로 어려움에 부딪쳤으나 결국 성사됐었다.

이 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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