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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쟁서 밀려나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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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중국발 에너지 위기가 전 세계적 정세 불안과 맞물리면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화석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입선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된 중국은 러시아 동시베리아와 아프리카.중앙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중국발 원자재난을 겪은 동아시아 주변국 및 세계 각국의 우려와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 특히 원자재.에너지 수입 경쟁국인 동북아.동아시아 국가들은 장기전략하에서 중국과 협력 및 경쟁하지 않을 경우 국가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의 3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아시아.미주 대륙 가운데 역내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한 곳은 아시아뿐이다. 특히 동아시아는 에너지 순소비 증가량 상위 국가들인 한국.중국.일본.대만이 몰려 있는 데다 역내 공급지역마저 없어 그 위기감과 경쟁이 대단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거 냉전과 국제 저유가 시절엔 쳐다볼 수도 없었던 러시아 시베리아, 특히 동시베리아 및 사할린 에너지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이미 사할린에는 엑손모빌.셸 등 세계 주요 에너지 자본과 함께 중국.일본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동시베리아 지역의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서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제대로 된 전략도, 열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과 중국.러시아의 장기전략이 동시베리아의 앙가르스크 유전 및 코빅타 가스전 개발 등을 놓고 충돌하면서 동북아의 역학구조를 변화시킬 조짐을 보여 자칫 한국이 이런 경쟁과 협력의 틀에서 소외될 수도 있어 대응이 시급한 현실이다.

냉전 이후 한동안 심각한 체제 혼란을 겪었던 러시아는 국제 고유가 시대와 동시베리아 및 사할린의 공급능력을 적절히 활용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꾀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자원과 시베리아 횡단철도 현대화를 통해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동북아의 신질서에 편입시켜 개발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프라드코프 러시아 신임 총리는 최근 한 회의에서 "러시아의 새 경제 체제는 역동성과 활력을 필요로 하며,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인재를 동원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여기서 프라드코프가 말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란 사회기간산업인 전력.통신.철도, 그리고 송유관과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인 이른바 망(네트워크) 구축사업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5대 망사업을 활용, 시베리아를 통해 동북아 지역으로 진출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국가적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 중 한국의 동북아 시대 구상과 맞물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업은 최근 가스프롬이 러시아 정부의 위임을 받아 입안한 동시베리아 지역의 4단계 계획안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는 아직 한국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도 못한 사이 2020년까지 한반도 및 동북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4단계 계획안을 입안,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이를 발빠르게 분석.대응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러시아의 '에너지 단일통합 공급망'목표나 'e-러시아'사업, '운송망 현대화' 등 사업의 복합성과 동시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구호로만 동북아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 시대를 열고, 한국을 포함한 새로운 동북아의 구조 변화에 맞서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정부 당국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러시아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동북아 국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에너지와 국가 안보, 러시아의 전략과 주변국의 대응을 철저하고도 냉정히 분석해 한국의 기여와 이들간 각축의 틈새를 파고드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불과 3-4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기존 메이저의 논리나 우물 안 개구리식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우리의 북쪽 시베리아 대륙에서는 동북아의 미래를 건 중국과 일본.러시아의 대전략이 충돌하고 있다.

권원순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