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농협 개혁, 정치 바람에 또 물 건너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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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농협을 개혁하기 위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정치 바람에 휩쓸려 또다시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각종 비리의 온상이 돼 온 농협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농협중앙회와 회원조합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앙회장의 권한을 제한하고 조합장도 단계적으로 비상임으로 바꿔 나가기로 했다. 또 중앙회장의 선출 방식을 단임제·간선제로 고치고, 조합 선택권을 도 단위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안은 농협 관계자와 조합장들의 입김에 밀려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개혁에 반대하는 농협의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들을 앞세워 조직적으로 저지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회 농수산식품위 위원장은 지난주 “정부의 개혁안대로 한다고 해서 농협이 잘 될 것인지 의원들은 확신이 없다”면서 “의원들은 농협회장 선거의 간선제 전환, 조합장의 비상임화, 조합선택권 확대 등의 쟁점이 낳을 부작용을 많이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법안을 심의할 농수산식품위 의원들이 농협 개혁 법안의 핵심 내용에 모조리 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래서는 농협법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기도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이익집단의 압력에 휘둘려 농협 개혁안을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항상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번번이 개악되거나 왜곡돼 온 게 사실이다. 이번에 모처럼 농민단체들까지 합의한 개혁안마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농협 개혁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또 농협의 지배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개혁도 이루지 못한다면 앞으로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나누는 ‘신경분리’ 방안은 꿈도 꾸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이나 이익집단의 요구에 귀 막고 외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농협 개혁은 지엽적 표심을 뛰어넘는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주문사항임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농협을 비리의 온상으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농민을 위한 진정한 생산자조합으로 바꿀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