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태양과 사랑…농익은 목소리가 전하는 감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태양과 사랑 : 푸치니 아리아집, 키리 테 카나와, 리옹오페라 오케스트라/켄트 나가노 ; 로제 비뇰 (Erato 0630 - 17071 - 2)

"가슴에 신선하게 와닿는 선율이 없다면 음악은 불가능하다. "

푸치니가 남긴 유명한 이 말은 그의 오페라들이 극적 구성이 빈약한데도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그가 좋은 선율을 만들어 놓고 앞뒤를 적당히 연결해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뉴질랜드 태생의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53)가 녹음한 '푸치니 아리아집' 에 타이틀곡으로 포함된 '태양과 사랑' 은 '푸치니 선율의 진수' 로 알려진 노래. 1888년 피아노 반주의 가곡으로 발표됐다가 '라보엠' 3막에 나오는 유명한 4중창 '달콤한 나날들이여 안녕' 으로 개작됐다.

EMI의 전신인 그라모폰사가 1904년 푸치니에게 녹음용으로 위촉했던 짧은 노래 '마음의 노래' 도 피아노 반주로 포함돼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첫곡으로 내세운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를 제외하면 '르 빌리' '마농 레스코' '라보엠' '나비부인' '라 론딘' '수녀 안젤리카' '자니 스키키' '투란도트' 등 소프라노 아리아들을 작품 연대기순으로 엮었다.

또 사이사이에 '마농 레스코' 3막과 '나비부인' 2막에 나오는 간주곡을 포함시켜 마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다.

중년의 나이에도 맑은 음색과 우아한 귀족적 풍미를 간직하고 있는 키리 테 카나와의 목소리는 무르익은 원숙의 경지에서 빚어내는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특히 고음역을 맴도는 '마농 레스코' 중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 '혼자 잊혀진 채 쓸쓸히' ,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 은 이 앨범의 백미다.

'노래에 살고…' 는 중년을 넘긴 소프라노 가수들이 음악과 함께 해온 인생을 되돌아 보는 의미에서 즐겨 부르는 애창곡. 탄탄하게 노래를 받쳐주는 켄트 나가노의 오케스트라 반주도 수준급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