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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자 윤증현 ‘외환시장’ 개입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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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칼을 뺄 것인가, 말 것인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태국 푸껫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특별 재무장관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태국 재무장관과 함께 공동의장을 맡은 윤 장관은 “글로벌 경제 침체가 아시아 역내 다자간 금융 협력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윤증현 경제팀의 외환시장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윤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 경제의 야전사령관으로 취임한 지 열흘 만에 원화 값 급락 사태를 맞고 있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윤 장관 취임일인 10일 달러당 1382.5원에서 20일 1506.5원으로 열흘 새 124원이나 떨어졌다.

경제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유럽 국가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국제금융 시장을 이토록 뒤흔들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본격적으로 수술에 나서면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아갈 것이란 기대도 빗나갔다.

하지만 원화가치 급락은 윤증현 경제팀의 색깔과도 무관치 않다. ‘환율 주권론’으로 무장했던 전임 강만수 장관-최종구 국제금융국장 라인은 원화가치 하락이 가파르다고 판단되면 어김없이 칼을 휘두르며(달러 매도) 시장과의 일전을 불사했다. 외환보유액을 쓰지 않고 원화값 하락을 막기 위해 대기업 자금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강공도 폈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윤 장관은 취임 후 시장 움직임을 존중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시장은 이런 변화를 파악하고 있다. 한 은행 외환딜러는 익명을 전제로 “시장이 몇 차례 정부의 (원화가치 방어)의지를 테스트했는데 개입은 적었다. 시장은 이를 원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각 시점과 관련한 아쉬움도 있다. 1월에 반짝 국제 차입시장이 열렸을 때 달러를 적극적으로 조달했어야 했지만 강만수 장관팀이 윤증현 장관팀으로 바뀌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 호기를 놓쳤다. 이제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렇게 되자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윤증현 경제팀의 입장도 조금씩 바뀌는 느낌이다. 윤 장관은 19일 국회에서 외환시장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말은 못 하지만 그냥 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은 “명분에 얽매여 시기를 놓치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달러당 1500원 선’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달러당 1500원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겪어보지 않았던 환경이다. 경상수지 적자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원화가치 하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강만수 경제팀조차 질색했던 수준이다.

20일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다 판 자금만 해도 3610억원에 달한다. 외환시장에서 이 돈을 달러로 바꾸면 원화가치는 계속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이래저래 이번 주가 윤증현 경제팀의 한 차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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