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밀양 들판 깻잎 향기 진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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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요즘 경부선 열차를 타고 밀양을 지나다 보면 차창 밖으로 멋진 야경이 펼쳐진다. 들판 가득 불 밝힌 비닐하우스들이 깜깜한 바다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야경을 만들어 내는 곳은 다름 아닌 비닐하우스 속 들깻잎. 앞면은 초록, 뒷면은 보랏빛의 잎들이 섭씨 7∼8도를 유지하는 하우스 안에서 가득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깻잎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농민들이 깻잎을 수확하고 있다. [밀양=송봉근 기자]


밀양 들깻잎은 겨울이 제철이다. 지난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밀양 들깻잎 납품량은 680t으로 전체 물량의 82%를 차지했다. 밀양 지역 24개 들깻잎 작목반 700여 농가가 300㏊에서 연간 400억원어치를 생산하고 있다. 연간으로는 전국 들깻잎 생산량의 60% 선이지만 겨울만 따지면 80%를 넘어선다.

밀양 들깻잎이 겨울 채소 시장을 장악한 비결은 불 밝힌 시설 하우스에 있다. 보통 들깨는 8월에 파종한 뒤 9~10월에 잎을 따고 일조량이 부족한 11월이 되면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다. 더 이상 잎을 수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밀양 농민들은 1990년대 초 ‘식물의 잠을 재우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새 불을 켜 놨다. 그 결과 들깨가 꽃을 피우지 않아 계속 수확할 수는 있었지만 농민들은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들깨는 병해충에도 약했다.

이런 어려움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밀양시)의 들깨연구팀이 해결해 줬다. 연구 결과 밤 12시부터 오전 2시까지 15분 간격으로 5분씩만 불을 밝히면 들깨의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병해충 걱정 없이 깻잎을 계속 딸 수 있는 사실을 밝혀내고 특수 조명장치를 개발, 95년 농가에 기술 보급을 시작했다. 들깨연구팀 이명희(30·여) 연구사는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 조명장치 보급을 계기로 밀양 농민들이 전국의 겨울 들깻잎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95년 잎들깨 1호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11개(남천들깨, 보라들깨, 동글 1호, 동글 2호 등)의 깻잎 생산용 품종을 개발·보급해 왔다.

밀양시 깻잎작목반연합회 김응한(53) 회장은 “들깻잎에 들어 있는 항균 성분(로즈마린산)이 생선회와 함께 먹으면 식중독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보쌈집에서 나오는 깻잎 가운데 십중팔구는 밀양산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밀양=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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