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
김용희 지음, 생각의 나무
320쪽, 1만1000원
교련복을 입고 삼각건과 붕대감기 훈련을 하던 군사독재 치하에 소녀 정희를 둘러싼 건 일상적인 폭력과 억압이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해방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청춘의 본능. 남진·혜은이를 좋아하던 소녀는 ‘선데이 서울’을 몰래 챙겨 읽고 빵집에서 남학생들과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미팅”을 한다. 서울서 전학 온 문학소녀 혜주를 친구로 사귄 뒤 “시집을 들고 고뇌에 잠긴 듯 이야기하는 남학생과 여학생. 공부(문학)야말로 연애를 위한 가장 훌륭한 매개물이자 장식물”이란 통찰도 얻는다.
우울한 시대에 발랄하게 살아가는 명랑 소녀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문학평론가인 지은이의 첫 소설인 이 작품은 30년 전 일기장을 펼쳐보는 듯 생생하다. 10대인 딸의 눈높이에 맞춰 썼다는 작가의 변을 감안하면, 데뷔작은 성공적이다. 정제되지 않은 문장이 간혹 걸리는 점은 아쉽다. 추억을 되새기고픈 40대, 엄마의 옛 일기장을 훔쳐보고픈 10대에게 권한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