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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본 주한미군 감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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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주한미군 감축문제는 사실 관계만 놓고 보면 의외로 담담하고 평범한 이야기다.

우선 주한미군 감축은 주일미군의 조정.통합.축소 문제와는 완전 별개다. 주일미군의 재편과 관련, 미 육군 제1군단사령부의 자마(座間)기지로의 이전 등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미 양국은 이런 것에 대해 아직 협의도 안하고 있다. 또 일본과 미국은 1995년부터 '오키나와(沖繩)에 관한 특별행동위원회(SACO)'를 통해 오키나와 소재 미군 시설.구역에 관련된 여러 문제를 협의해 왔다. 즉 일본 내 미군기지 재편 문제는 주한미군 문제와는 별개로 오래 전부터 논의돼 왔다.

또 한.미 양국은 '북한의 잘못된 판단을 방지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지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특히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군사태세를 정치적 이유만으로 변경할 정도로 감정적인 나라가 아니다. 50년간 미국과 한국이 유지해온 휴전체제가 실패할 경우 가져올 위험을 워싱턴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관계와는 다른 방향으로 한.미동맹의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의 정책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미국은 9.11테러 이후 '국제 테러와의 전쟁'이란 기본방침을 굳혔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동조하는 국가를 동지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눈에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싸우는 그룹에 들어있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PSI에는 비판적이다.

둘째, 한국은 6자회담의 진전이나, 한.미.일 정책협조가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도 전에 북한과의 교류(군사회담, 철도연결 협의, 경제실무자 회담, 식량.비료 지원)에서 너무 앞서 나갔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셋째, 노무현 정권의 탄생 전부터 일어난 한국 내 반미 감정은 주한미군 감축 구상의 구체화를 앞당겼다. 독일과 한국이 병력감축 우선 국가가 된 것도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미군을 둘 생각은 없다"(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는 미국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 한국과 독일은 미군 감축방침에 대해 그다지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미 양국의 북한 군사력에 대한 기본적 인식차이가 주한미군의 감축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5월 말 1주일가량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한.미 동맹관계를 걱정하는 전문가 몇명과 이야기를 했다. 그때 느낀 것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견해차이가 최근의 한.미 간 의견대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군사적 위협으로 보면서도 그 목적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일은 한걸음 더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뒤 북한이 자주적 통일을 통상전력으로 달성하려 할 때 한.미의 군사적 대응을 봉쇄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이 볼 때 한국의 자세는 "서둘러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핵 폐기(CVID)'를 요구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가 된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틀어져 버렸다.

주한미군 감축방침이 한국에 제시됐다. 그 시기와 규모가 어떻게 될지는 한국의 대응에 달려 있다. 크게 보면 미국의 군사재편은 효율성과 군사기술의 발전, 이라크 복구와 얽혀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문제는 한국에 대한 장비 이전, 주한미군의 장비 개선, 한국군의 근대화 계획, 미국과 한국 간의 북핵 문제를 보는 시각차, 한국민의 민족주의와 자주정책까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즉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효율화.합리화.첨단화를 추진하는 과정이지만, 속마음으로 들어가면 정치적 요인이 엉켜 미국과 한국의 구조적 갈등을 무시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돼버렸다. 앞으로 미국이 동맹관계를 재구축하면서 해외 미군의 재배치, PSI를 추진해 나갈 때 한국의 대응에 따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관여는 빠른 속도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일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장·주임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