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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대 ‘세기의 경매’ 약탈품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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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국 측이 강력하게 반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청나라 시대 청동 12지상 중 토끼머리(上)와 쥐머리상.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아편전쟁 때 원명원에서 약탈해 간 국보급 문화재다. [크리스티 제공]

 전설이 된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1936∼2008)의 비극일까? 생전에 그가 소장했던 예술품 700여 점이 나오는 대규모 경매가 난항에 빠졌다. 얼어붙은 세계 미술시장에다 “약탈 문화재를 환수하라”는 중국 측의 거센 항의까지 설상가상이다. 경매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23일부터 3일간 열린다. 선보일 소장품은 피카소·마티스·몬드리안·클레·브랑쿠시 등 20세기 서양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에서부터 중국 청나라 청동상 등 국보급 문화재까지 망라하고 있다. 경매사 크리스티 측은 낙찰가 규모가 3억5000만 달러(약 5120억원)에 달할 걸로 전망하고 있다. 소장자의 명성이나 소장품의 가치, 경매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세기의 경매’다.

◆약탈 문화재 환수하라= 문제는 아편전쟁(1차 1840~42, 2차 1856~60) 당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약탈해 간 문화재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궁인 원명원(圓明園)에 있던 청동 12지상의 일부인 쥐머리, 토끼 머리 동상이 그것이다.

지난해 가을, 경매에 나올 예술품의 면면이 알려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문화재 환수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81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중국 변호인단이 크리스티의 쥐·토끼 머리상 경매를 취소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반환 소송을 준비중이다. 여기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원명원에서 약탈된 문화재의 소유권은 명백히 중국에 있다. 이 문물들은 마땅히 중국에 반환돼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예정대로 경매를 강행할 방침이다.

◆불황 파고도 깊어= 두 점의 중국 문화재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미술시장의 불황이다. 불황의 파고는 생각보다 깊다. 세계 최대 매출의 예술품 경매사 크리스티는 지난달 “미술업계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전사적 차원의 조직 쇄신을 단행, 상당 규모의 직원을 정리할 것”이라 밝혔다. 이미 희귀서적 및 와인 사업부를 축소했다.

크리스티와 함께 양대 경매사로 꼽히는 상장사 소더비의 주가는 지난 18개월간 80% 이상 급락, 1990년대초 수준까지 떨어졌다. 신용도도 투기등급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1일 “국제 미술품 경매시장 침체에 따라 소더비의 외형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내비쳤다. 265년 역사를 가진 소더비의 현재 신용등급은 투자등급 중 최저인 ‘BBB-’다.

세계 미술의 중심인 뉴욕 첼시의 화랑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문닫은 대형 화랑이 네 곳이다. 나머지 화랑들도 전시 기간을 연장하고, 직원수를 줄이고, 작품값을 내리는 등 불황과 싸우고 있다. 영국의 미술시장 분석업체 ‘아트택틱’은 지난달 “미술시장이 회복되는데 3∼5년은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와중에 열리게 된 크리스티의 ‘이브 생 로랑 컬렉션’은 ‘세기의 경매’라는 명성에 걸맞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이번 경매 결과가 올 상반기 세계 미술시장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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