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무 정당’한나라 답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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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말 한나라당은 80여 개의 법안을 일괄 처리하겠다며 민주당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사생결단식 저항에 부닥치자 우왕좌왕하다 물러서고 말았다. 당시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가 법안 처리 실패의 1차 요인이긴 했지만, 한나라당 내부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한나라당은 대정부질문이 끝나고 상임위가 본격 가동되는 19일부터 쟁점 법안 처리에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취약점을 보완했는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한나라당엔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데 필수적인 5가지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①구심점이 없다=원외인 박희태 대표는 최근 4월 재·보선 출마설로 법안 처리에만 신경을 집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최근 변호사시험 법안이 부결돼 리더십에 상처를 받은 데다 야당과 얼굴을 붉혀가며 ‘악역’을 떠맡는 게 부담스러울 거라는 말도 적지 않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영향력은 크지만 공식 지도부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중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국내에 없고, 정두언 의원도 리더 역할을 맡기엔 시기상조다.

②당·청 소통이 없다=얼마 전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의 사퇴 문제처럼 핵심 사안이라도 당과 청와대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너무 잦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18일 “당과 청와대가 쌍방향 교류를 해야 여권이 건강해지는데 지금은 청와대에서 일방적인 당부만 내려온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정치인 입각에 부정적 입장이란 사실이 확실해지면서 의원들 사이에선 “뭣하러 총대를 메느냐”는 냉소적 분위기도 있다.

③친이·친박 협력이 없다=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를 어떻게 얻어낼지도 불확실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일 청와대 회동에서 “쟁점 법안은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입장과는 온도 차이가 있었다. 이 발언은 친박계 의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직까지 당 지도부와 박 전 대표 간에 협력 관계가 조성됐다는 징후는 없다.

④초선들의 패기가 없다=당의 활력소가 돼 줘야 할 초선들이 너무 조용하다. 과거 열린우리당이 2004년 ‘4대 입법’을 추진할 때 앞장섰던 것은 초선 의원들이었다. 반면 지금 한나라당에선 초선들이 당 실력자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입을 닫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해 공천 때 홍역을 치른 탓이다. 의욕을 보여야 할 초선들이 벌써부터 차기 공천에만 신경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91명이나 되는 초선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쟁점 법안 처리는 탄력을 받기 힘들다.

⑤직권상정 보장도 없다=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요청에 응해줄지도 미지수다. 이번에도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법안 표결을 막을 경우 남은 방법은 의장의 직권상정뿐이다. 당에선 “김 의장이 지난번엔 야당의 체면을 살려줬으니 이번엔 여당 입장을 배려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희망 수준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집권당에서 법안 처리와 관련해 부탁하거나 상의하자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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