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추락 참사]유족대표 5명이 둘러본 사고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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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새카맣게 불타 오그라든 시신, 코를 찌르는 악취, 휴지처럼 구겨진 기체. 8일 오전 유족대표로 처음 사고 현장을 조사한 정홍섭 (鄭弘燮.46.회사원.충북청주시흥덕구북면동) 씨등 5명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듯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산자락에 걸쳐있는 비행기 동체는 꼬리부분부터 3분의1 정도만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잔해는 충돌과 화재로 부스러기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또 남은 부분도 세조각으로 찢긴채 그중 하나는 산봉우리 방향으로 25m쯤 날아가 떨어져 있었다.

이에 앞서 추락지점에서 70여m 아래쪽에 있는 미국측의 사고대책지휘본부에 도착한 유족대표들은 빽빽이 우거진 밀림 사이에 임시로 만든 오솔길을 따라 사고현장에 들어갔다.

풀숲을 헤치며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 30㎝의 길을 따라가 도착한 현장엔 형체만 남아있는 기체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비행기 내부가 대부분 불타버려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더군요. 타다 남은 숯덩어리같이 보이는 것이 바로 시체였습니다.

" 鄭씨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찢겨진 두 조각중 꼬리쪽은 1층의 화물칸과 2층의 여객칸을 구분하는 선반이 남아있는등 비교적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으나 앞쪽은 천장이 날아가버려 남은 것이라곤 껍데기뿐이었다.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꼬리부분을 둘러본 유족들은 시체의 처참한 모습에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좌석들은 모양을 겨우 갖추고 있었고 그위에 검게 그을은 시체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이들은 사고가 난 뒤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불에 탄 것으로 보였다.

꼬리부분에서 발견된 시체는 3~4구로 보였으나 정확히 몇구인지는 알수 없었다.

기체 앞부분의 내부는 더욱 참혹했다.

좌석등 비행기 내부 집기조차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보이는 것은 모두 숯처럼 변한 시체뿐이었다.

얼핏 7구가 대부분 엎드리거나 누운 상태로 보였고 그중에는 가족인듯 서로 엉켜있는 모습도 보였다.

어머니인듯한 사람이 아이들을 껴안고 숨져있는 모습이 눈에 띄자 유족들은 발길이 달라붙은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었다.

유족들이 비행기 안에서 본 시체는 대략 11구.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람같다" 는 짐작만 할뿐 완전한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은 한구도 없었다.

물론 시계.반지.옷가지등 유류품은 아예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20여분동안 둘러본 뒤 사고현장을 떠나는 유족들은 하나같이 납처럼 굳은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유가족 대표의 현장조사는 전날 있었던 유족들의 답사가 현장에서 3백~4백m 떨어진 버스 안에서만 볼 수 있도록 제한되는 바람에 유족들이 반발하자 이날 다시 계획된 것이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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