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스케치]전통직물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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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 고대의 전통직물에 관심을 갖고 일본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린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올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6월말 1학기를 마치자마자 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 스스로 문헌을 통해 한국 것으로 발표한 카펫 일부가 최근 중국 소수민족 것으로 수정돼,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4박5일 동안 유물을 살펴보고 슬라이드도 찍었다.

7월초엔 중국 상하이 (上海) 방적대학에서 중국 고대직물 연구로 학위를 받은 제자 심연옥박사와 중국을 찾았다.

12일 동안 여러 박물관에 수장된 유물들을 둘러보았다.

일본인들이 중국 소수민족 것으로 수정한 카펫과 유사품이 있는지 찾아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티베트 인근에서 비슷한 유물을 발견, 사가지고 들어왔다.

앞으로 우리 것과 면밀히 분석.비교할 작정이다.

기대못했던 수확도 있었다.

심박사가 중국의 토굴 (土窟) 주택을 기웃거리다가 수십년전에 사용됐던 중국의 물레와 직기 (織機) 의 기대 (機臺) 를 찾아냈다.

물레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직기의 기대는 우리 베틀의 기대와 판이했다.

중국과 우리의 직물문화의 갈래가 일치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일부 학자들이 "한국 직물은 중국 영향을 받아 독자성이 부족하다" 며 입버릇처럼 되뇌인 말들을 수정해야 할 훌륭한 실증자료이다.

시원한 산바람에 몸을 식히듯 한여름의 무더위가 씻은듯이 사라졌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3천여년전에 짠 화려한 비단이 출토돼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견직물 제작국이라는 공인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출토지역은 우리 조상들도 일찍이 동아시아의 문명을 읽으며 생활했던 곳. 중국 박물관에 보물처럼 간직되고 있는 화려한 비단들은 사실 중앙아시아와 각 소수민족의 생활현장에서 수없이 출토된 것들이다.

일본도 그렇다.

삼국.통일신라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직물의 수는 한이 없다.

반면 대부분 중국 도래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현재 직물유품을 많이 간직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으며, 더욱이 일본인은 이들 유품을 복원해 세계의 유명 디자이너를 불러 자랑하고 수출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쉽게도 비단의 유품이 여태껏 한점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 비단을 전수한 나라인데도 말이다.

그러다 필자는 올초 경주 천마총 유물 1점에서 비단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천길만길 뛰며 기뻐했다.

10년전 일본학자로부터 조선시대에 일본에 건너간 카펫이 수십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배려로 조사도 했다.

그전보다 더욱 분주하게, 시도때도 없이 일본을 드나든 것도 일본인들이 특별행사 때나 유물을 2~3점씩 공개하기 때문이다.

남의 손에 쥐여져 있는 내것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심정이란…. 내년이면 벌써 정년퇴직이다.

지난 20여년의 전통직물에 대한 탐색작업을 묶어 이달말 대원사에서 책을 낼 예정이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면 이달말 티베트 인근으로 다시 떠날 작정이다.

물론 중국에 남아 있는 우리의 자취를 되찾기 위해서다. 민길자 (국민대 교수.직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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