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조 때문에 왜곡되는 은행·공기업의 임금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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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일부 은행에서 임원과 부장의 임금이 역전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위기를 맞아 임원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과 상여금의 상당 부분을 깎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일반 직원들의 임금은 손댈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임금 구조가 왜곡되면서 일부 국책은행들의 고참 부장은 기를 쓰고 임원 승진을 기피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경영진의 연봉은 대폭 삭감한 반면 중간 간부들의 급여는 손대지 못해 생긴 현상이다.

요즘 공기업과 은행의 신입사원 연봉 삭감이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금융업계의 대졸 초임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207%로 미국의 61%, 일본의 135%보다 지나치게 높다. 과도한 대졸 초임을 낮추고 여기서 생기는 재원을 인턴사원 채용이나 일자리 유지에 투입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의 좋은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현실화되면 임금 구조의 왜곡현상은 더 심해질 게 분명하다. 경영진과 신입사원의 월급봉투는 얇아지는 반면 노조의 보호를 받는 일반 정규직의 임금은 쉽게 깎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형적인 구도는 ‘일자리 나누기’나 조직의 건강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당연히 은행과 공기업의 중간직급 급여는 조정돼야 한다. 그래야 기형적인 임금 왜곡을 바로잡고 일자리 나누기도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하후상박(下厚上薄)’의 낡은 관행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호봉제 대신 이미 민간기업에서 보편화된 연봉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에 대해 은행과 공기업 노조는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반대한다”며 미리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노조도 구름 위에서 내려와 현실에 맞게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어차피 긴축경영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임금 삭감은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그런데도 노조 혼자 기득권에 집착할 경우 온 사회의 손가락질을 자초할 것이다. 공기업과 은행의 임금 역전 현상을 지켜보면서 노조를 향한 사회적 시선은 이미 싸늘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