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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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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인 세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판이 벌어진다는 화투는 잘 알려진 대로 일본에서 건너왔다. 쌀 한 가마가 4원이던 시절, 친일파 이완용이 화투판에서 수만원을 날렸다는 기사가 당시 신문에 실릴 정도였으니 일제시대 때 얼마나 성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작 일본인들은 화투를 즐기지 않는다. 젊은이 중에는 화투짝 구경도 못해봤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미국이나 중국 대학 기숙사에서 일본 유학생에게 화투를 가르쳐 준 뒤 짭짤하게 용돈벌이를 했다는 유학생들의 무용담이 나올 만도 하다. 그래도 꾸준히 화투 패를 만들어 팔고 있는 일본 회사가 있다. 전자 게임기로 세계 시장을 평정해 연간 5000억 엔(약 7조5000억원)의 순이익을 낸 닌텐도(任天堂)가 바로 그 업체다.

닌텐도는 1899년 화투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도안은 공예가 출신의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직접 그렸다. 세계 최초로 휴대용 게임기를 개발한 것은 1979년이다. 한 직원이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승객들이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시간을 때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91년 걸프전 때는 ‘게임보이’가 미군 참전 병사들의 필수품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였다. 어느 날 폭격을 맞아 쑥밭이 된 미군 막사에 반쯤 부서진 게임기 한 대가 발견됐다. 한 병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을 켜 보았더니 멀쩡하게 작동이 됐다. 어린이들이 함부로 다루다 떨어뜨릴 경우에 대비해 시제품을 본사 옥상에서 땅으로 떨어뜨리는 실험을 반복한 결과였다.

비상경제회의에서 “우리도 닌텐도 게임기 같은 걸 개발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영화 ‘주라기 공원’ 한 편의 수익이 현대자동차 150만 대 수출과 맞먹는다”고 한 발언을 연상케 한다. 아마 대통령은 정보기술(IT)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의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게임산업에서도 금방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의 IT 종사자들은 닌텐도의 명성이 ‘화투 판에서 거저먹은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100년이 넘도록 화투 생산을 계속하며 되새기는 초심(初心), 한 우물을 파면서도 부단히 혁신을 추구하는 열정,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풍, 고객 만족 정신, 이 모든 것이 응결된 결정체가 오늘날의 닌텐도 게임기란 것이다. 창의성만큼은 우리도 뒤지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 놀이를 부단히 응용해 고스톱이란 국민 오락을 개발한 그 창의성 말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