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로미오 앤 줄리엣’ 굴욕 딛고 함박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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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극적 반전이다. 지난달 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은 시작과 함께 구설에 휘말린 작품이었다. 한국 주최측이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추가 지급분을 주지 않자 프랑스 제작팀이 일방적으로 보이콧을 선언, 2월 3일 공연은 사상 초유의 ‘공연 취소’ 사태를 겪었다. 게다가 환불 조치가 이뤄지면서 유료 객석 점유율이 10%에도 못 미친다는, 굴욕적인 사실까지 공개돼 단단히 창피를 당했다. <본지 2월 6일자 19면>

그러나 비 온 뒤 땅이 더 굳기 마련일까.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로미오 앤 줄리엣’은 순항중이다. “공연이 좋다”란 입소문까지 퍼져 주말이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프랑스 뮤지컬로는 2006년 공연된 ‘노트르 담 드 파리’ 내한 공연 이후 최고 퀄리티다.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춤을 추는 댄서가 구분된다. 또한 별다른 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전개하는 ‘송 스루(song through)’ 형식이다. 화려한 무대 변환보다는 단일 세트를 조금만 변화시켜 오히려 여백의 미를 추구한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이런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을 약간 비틀었다. 주요한 부분에서 배우들은 뜨겁게 연기하거나 담백하게 읊조린다. 노래보다 메마른 언어가 때론 감정전달, 혹은 사건전개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거의 모든 장면마다 변화되는 무대 세트 역시 여느 프랑스 뮤지컬에 비해 화려하고 웅장하다.

무엇보다 백미는 역시 노래다. 각 노래마다 나름의 사연과 완성도가 있다. 작품은 ‘베로나’로 문을 연다. 강력한 드럼과 일렉트로닉 기타의 전주는 극의 드라틱함을 예감케 한다. 바통을 이어 받은 ‘증오’는 기구한 운명의 한 자락을 감지하게끔, 안타깝고 격정적이다. 작품의 최고 히트곡인 ‘세상의 왕들’은 빠른 비트로 분위기를 잡더니 귀에 착착 붙는 중독성으로 관객도 자연스레 따라부르게 만든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2년 전 국내에서 초연됐다. 당시엔 느슨했다. 배우들의 연기에도 에너지가 적었다. 그러나 이번엔 모든 게 탄탄했다. 배우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고, 새 노래 4곡이 추가됐지만 대세를 변화시킨 건 아니다. 역시 무대는 살아 꿈틀거린다. 어쩌면 초반의 우여곡절이 제작진을 더욱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자리를 뜨면 손해 막급이다. 신나는 비보잉과 함께 하는 커튼콜은 또 하나의 공연이다.  

최민우 기자

■공연은 2월 27일까지.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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