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연한 노동시장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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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경없는 개방화와 정보화 시대는 불가피하게 경쟁과 생산성향상을 항상 의식하고 살게 만든다.

경쟁은 게임의 성질상 승자와 패자를 가르며 승자로 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즉 임금이나 고용의 유연성뿐 아니라 각종 노사관계 제도도 신축적으로 운영되는 경제가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미국경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군살을 빼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커녕 여기서 주저앉을지 모르는 일대 전환기에 처해 있다.

그동안 소규모로 기업단위에서 이루어진 리스트럭춰링차원의 고용조정으로 사회가 한때 긴장도 했으나 이제는 차원이 달라졌다.

인원감축을 하지 못하면 10대 그룹안의 거대기업도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한보 (韓寶)에서 기아 (起亞)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작년말 부터 거친 공방을 벌였던 노사관계법 개정 과정을 차분하게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때 좀더 냉정하게 다가오는 큰 흐름의 방향을 읽고 각종 경직적인 제도를 노사가 합의해서 고치고 기업이 사전에 조직을 정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도 노조도 결국 갈 데까지 가서 회사가 문을 닫아야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가 앞으로도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 크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결국 우리경제가 정보화 시대에 맞는 산업구조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정부가 민간기업 임금체계의 유연성을 늘리기 위해 점차 퇴직금제도를 없애고 공공부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고위직공무원의 계약고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제나 변형근로제를 위한 법제화나 특별법에 의한 정리해고의 가능성도 검토되는 모양이다.

꼭 진로 (眞露) 나 기아사태 때문이 아니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법제화는 필요하다.

문제는 이것이 새로운 갈등요인이 되지 않도록 논의과정을 공개하고 합의도출을 위해 정부와 노사가 협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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