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차 연비의 모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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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비는 자동차의 연료소비량을 나타내는 지표로 자동차 에너지 소비 효율이라고도 부른다. 일정한 연료로 차가 얼마만큼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반대로 일정한 거리를 달리는 데 차가 연료를 얼마나 쓰는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유리창엔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 스티커가 한 장씩 붙어 있다. 여기에 표시된 수치가 공인 연비다.

 ‘공인 연비’는 국가가 공인한 시험기관에서 측정된 연비를 말한다. 국내에선 자동차공해연구소·자동차부품연구소·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너지기술연구소 등 4곳에서 측정한다. ‘공인 연비’를 표시하는 단위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미국에선 1갤런(약 3.7L)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마일(mpg)로 표시한다. 유럽에선 100km를 달리는 데 필요한 연료를 리터(L/100km)로 표시한다. 국내에선 연료 1L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연비의 단위(km/L)로 쓴다.

승용차의 공인 연비는 실제 도로를 달려 측정하는 게 아니다. 공인 연비 측정기관에는 항온·항습을 유지하는 연비 시험실이 있다. 여기서 운전 보조장치를 단 차를 차대 동력계에 올린 뒤 주행시키면서 이때 나오는 배출가스를 측정한다.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탄화수소·총탄화수소의 단위 주행거리당 배출량을 분석해 ‘카본밸런스법’으로 연비를 산출한다. 다만 국내의 경우 승합차와 상용차는 직접 노면 위를 달려 연비를 잰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벤츠 성능 시험연구소에서 자동차 연비를 측정하고 있다.


이때 실험용 차량은 운전 보조장치의 지시에 따라 운전자가 직접 몬다. 국내에선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가지의 전형적인 차량 주행 흐름을 본떠 만든 CVS-75 모드를 활용한다. 주행 거리 160km 이하의 차를 25도의 항온·항습실에 12~36시간 보관해 엔진을 완전히 식힌 다음 실험을 한다. 차대 동력계에서 31분15초 동안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고 23차례 멈춰선다. 평균 시속 34.1km, 최고 시속 91.2km로 총 17.85km를 주행한다.

미국의 연비 측정 모드 ‘EPA’는 도심·고속도로의 두 가지 항목으로 나뉜다. 도심은 엔진이 차가운 상태에서 시동을 걸어 42분간 최고 시속 90km, 평균 시속 32km로 달린다. 중간에 23차례 멈춰 선다. 고속도로는 엔진이 데워진 상태에서 최고 시속 97km, 평균 시속 77km로 16km 이상 쉼없이 달린다. 여기서 얻은 수치는 실주행 연비와 차이를 줄이기 위해 도심은 10%, 고속도로는 22%를 다시 낮춘다. 최근 EPA는 세 가지 테스트를 더했다. 신뢰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의 경우 초기에는 미국 방식을 따르다가 이젠 상습 정체를 감안한 10.15 모드를 개발해 쓰고 있다. 660초 동안 평균 시속 22.7km, 최고 시속 70km로 4.165km를 달려 측정한다. 유럽은 ‘ECE’ 모드를 쓴다. 1160초 동안 평균 시속 33.6km, 최고 시속 120km로 11km를 달린다. 해당 국가의 일반적인 주행 환경과 관습이 연비 측정 모드에 스며든 셈이다.

같은 차종이라도 국내에서와 해외에서의 연비가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인 연비 측정 때 가급적 실제 주행 환경을 재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운전자가 체감하는 연비는 공인 연비를 밑돌기 마련이다. 판에 박힌 모의 주행과 달리 실제 주행을 할 때는 바퀴의 마찰 저항, 공기 저항, 타이어 공기압, 정비 상태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인 연비는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비교의 잣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결국 연비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운전자 본인의 운전 습관이라는 점을 기억해 둬야 한다.

김기범 월간 스트라다 기자 cuty74@istrad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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