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정치에 혁명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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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에 놓고 대의원 혁명을 이루자느니, 돈선거는 안된다느니, 정책대결을 벌이자느니 각종 좋은 말들이 모두 나왔다.

일부 지구당위원장들은 대의원들의 자율적인 결정을 보장한다며 마치 대의원 혁명의 기수나 된 것처럼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선후 대의원 혁명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이번 경선은 철저하게 계파별로 지구당위원장의 줄 세우기로 결정됐다.

대의원들의 대회가 아니라 지구당위원장의 잔치였다.

경선에서 아슬아슬한 결과를 얻었던 후보들은 "대의원 몇십명만 더 확보했더라면…" 하는 식의 후회가 아니라 위원장 1명을 더 못잡은 것을 애석해했다.

위원장 1명을 잡으면 30~40명의 대의원은 고구마줄기처럼 따라온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돈 안드는 선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밝힌 1억5천만원 때문에 시비가 일고 있지만 7천만원을 썼다고 공개한 최병렬 (崔秉烈) 후보 외에는 어느 후보도 돈 쓴 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했다.

돈을 안쓴다는데 어느 단체가 20억원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됐고, 한 진영의 본부장은 1천만원을 호텔에 흘리고 다닐 정도였다.

정책대결 대신 웅변대회와 폭로시비가 판을 치고, 민주주의를 한다고 경선을 해놓고 결과에 불복해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경선이 형편없었다고 매도만 할 수는 없다.

여당사상 이러한 자유경선은 처음이며, 이 시절 어느 야당도 그나마 이런 경선을 치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나무를 보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나 숲을 보면 확실히 변했다는 평가도 설득력이 있다.

혁명은 없었지만 그래도 진보는 있었다.

지난 4.11총선도 비슷했다.

선거혁명을 내세우며 선거비용을 8천만원 이상 쓰지 못하도록 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십수억원씩 쓰던 버릇이 든 당사자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으며 의석수에 연연하는 집권당의 현실이 이러한 이상 (理想) 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과거에 비해 그래도 깨끗해졌다는 평가가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대의원 혁명이다, 선거혁명이다 말은 쉽게 하지만 과연 현실정치에서 실현 가능하느냐의 문제는 매우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하향식 (下向式) 조직으로 된 우리 정당구조에서 지구당위원장과 대의원은 후견자 - 수혜자 관계로 굳어져 있다.

대의원들이 지구당위원장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풍토인데도 대의원 혁명을 외친다고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돈 안드는 선거를 외치지만 자원봉사자조차 돈을 바라는 풍토에서 선거혁명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정치는 멸균 (滅菌) 된 실험실에서 시행되는 과학실험이 아니라 불합리와 다양성과 역사가 농축된 현실속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이상과 완전을 실현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작동하고, 작동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이상이 높고 고고해도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는 제도를 위한 제도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역작용만 커지거나 제도의 희화화 (戱畵化) 만 낳는다.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유토피아를 추구했던 공산주의가 역사를 오히려 후퇴시킨 것을 보지 않았는가.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을 쫓기보다는 현실에 반발짝만 앞서서 끌고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 기술이 바로 정치다.

대의원 혁명이 안됐으니 미국식의 예비투표로 가야 한다는 식의 우리현실과 유리된 주장을 하기보다는 대의원수를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 위원장이 장악하기 어렵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처방이다.

무조건 돈을 못 쓴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경쟁의 규칙을 만들어 위반자를 징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정치개혁 입법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과거와 같은 식으로 치러서는 결코 안된다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자연히 그 입법과정은 이상주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개혁의지가 없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도외시하고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다소 느슨하더라도 제대로 집행되는 법을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

정치는 혁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문창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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