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파괴 유혹에 허약한 과학 … 어른들의 위험한 장난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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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384쪽, 2만원

영국인 출신 미 물리학자로 프린스턴 고등 학문연구소의 명예교수인 프리먼 다이슨(86)의 자서전이다. 그런데도 “가장 문학적으로 쓰인 과학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릴 때 나무 위에서 미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동화 『마법도시』를 읽던 소년(자신)을 그린 첫 문장부터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시적인 표현이 놀랍고, 구체적인 경험담을 풀어놓은 이야기는 역사와 우주·인간이라는 주제를 매끄럽게 넘나든다. 다이슨은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폭격기 사령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물리학계에서는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족적을 남겼다. 핵 추진기를 이용한 우주비행계획인 ‘오리온 계획’에도 참여했다. 20세기 과학 기술의 현장에서, ‘인간’과 ‘과학’의 의미를 꾸준히 성찰해온 그의 고민이 담겼다.

책은 어릴 때부터 청소년까지의 영국에서의 경험(1부),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물리학 연구에 몸담은 이야기 (2부),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 기술에 대한 전망(3부)으로 구성됐다.

그는 “한 과학자가 ‘인간의 상황’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가 느낀 이야기는 ‘지적인 호기심으로 시작한 과학이 권력체제와 결탁하면서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른들은 위험한 장난감을 갖고 노는 다 자란 아이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 “갑자기 폭발해 제국을 멸망시키는 장난감”이 될 수 있다며, 겉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언제나 파괴의 신화에 대한 유혹 앞에서 허약하기 그지없다고 경고한다. 원제 『Disturbing The Universe』.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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