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큰 교훈 준 할아버지의 작은 실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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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로 결혼 4년째인 29세의 주부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시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장남인 남편은 늘 손자를 보고싶어 하는 시부모님을 위해 전남 광양에서 부산으로 자주 간다.

며칠전 남편과 함께 부산에 간 나는 시어머님과 함께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갔다.

시어머니는 제과점 앞을 지나가던 중 고개를 숙이고 앉아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에게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고 인사를 건넨 뒤 인근 좌판에서 파는 콩국 한 그릇을 사서 드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붙은 껌을 떼내고 있었다.

시어머님은 그 할아버지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무더운 날씨에 언제나 저렇게 바닥에 붙은 껌을 떼내고 있다면서 몹시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도로 위를 보니 사람들이 씹다 버린 껌들이 까맣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이가 씹던 껌을 무심코 바닥에 버려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냥 지나쳤던 것이 새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제과점이 있는 도로를 지나면서 차창밖으로 내다보니 어제 본 그 할아버지께서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서 껌을 떼내고 있었다.

차 안에 에어컨을 켜고 시원하게 앉아 껌을 떼내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죄송스러움과 존경스러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그렇다.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는 할아버지의 작은 실천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가르침과 교훈을 나에게 주었다.

고속도로를 접어들면서 아이에게 그 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주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우리들의 작은 관심과 실천이 얼마나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

유해진〈전남광양시금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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