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논점 벗어나면 감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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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많은 고3 학생.대입 재수생.교사들이 전화를 걸어 와 "논술고사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 "논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 고 요구하곤 한다.

논제 유형을 소개한데 이어 수험생들이 논술고사 답안 작성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잘못과 학습요령을 소개한다.

"수험생들의 답안중 논점을 벗어나 감점을 받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

각 대학의 논술고사 채점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중 하나다.

많은 수험생들이 논제가 요구하는 쟁점에 적확한 답안을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과목에서 문제의 요구에 벗어난 답안이 0점인 것과 마찬가지로 딴소리를 한 논술에 대해서 0점을 줘도 할 말이 없다.

일상생활에서는 의도적으로 논점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싸움이 큰 싸움이 되는 것도 처음에는 작은 논쟁거리가 다른 논점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물음에 대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했을 때나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서 논점을 회피해 빠져 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같은 이유로 의도적인 논점 회피는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번 개각 때 총리는 누가 됩니까?" "총리 지명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

기자의 질문에 여당 당직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가정해 보자. 물은 것은 총리가 누구인가였지 개각이 누구의 권한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답은 개각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논점이 맞춰져 있어 명백하게 논점을 벗어나 있다.

논술에서는 이같은 논점을 비켜간 답은 낮은 점수를 면할 수 없다.

가령 95학년도에 서울대가 출제한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에 대해 설명하라' 는 논제에 대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설명하기 보다는 사회주의의 모순을 지적해 기본점수도 받지 못한 수험생이 많았다.

'개인의 익명성을 치유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사회 전체의 구조적 해결 노력에 대비해 설명하라' 는 97학년도 서울대 논제에서도 논점을 벗어난 답안이 적지 않았다.

'목욕탕에서 처럼 홀딱 벗고 만나자' '명찰을 달고 다니자' 는 기상천외한 답이 나왔다고 한다.

서울대가 공개한 수험생의 답안 (본지 25일자 19면 참조) 을 살펴보면 논점을 벗어난 답안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32점 만점에 28점 정도 받았다는 이 답안들은 제시문을 어느 정도 활용했는가의 여부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논제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양시.양비 (兩是.兩非) 론도 논점을 벗어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논술은 자신의 분명한 주장을 요구하는 것이지 듣기 좋은 주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수험생들이 한쪽 입장을 선택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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