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자리 질을 따질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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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10만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자영업과 비정규직이 집중적으로 증발됐다. 정부가 추정한 올해 일자리 감소분 20만 개가 불과 한 달 만에 반절이나 넘어선 것이다. 2~3월은 더 걱정이다. 50만 명의 고교·대학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미 고용대란은 출구 없는 현실이 됐다. 요즘처럼 실업이 끔찍한 비극일 때는 없었다. 외환위기 시절에는 주로 대기업과 금융 부문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 그나마 명예퇴직금 같은 목돈을 받고 나갔다. 지금은 취약계층인 비정규직·자영업 중심으로 고용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실업은 신빈곤층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그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벽 인력시장을 찾았다. 그는 “일자리를 최우선하겠다”며 “지금은 일자리의 질을 따질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는 윤 장관의 위기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금은 낮은 연봉의 사회적 일자리나 임시직 인턴을 가릴 때가 아니다. 일단 일자리부터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사회안전망이자 경기 대책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유지 노력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가 최우선 정책이라면 당연히 예산 배정도 조정해야 한다. 이미 적립금이 줄기 시작한 고용보험기금으론 실업 빙하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 3조원 규모로 책정된 실업급여 예산부터 과감히 늘려야 한다. 필요하면 고용창출 효과가 낮은 토목 위주의 공공사업 지출을 줄여 일자리 예산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고용지표는 후행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자리 대책은 악화된 고용통계가 나오기 훨씬 전에 선제적으로 집행돼야 약발이 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