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새물결]살얼음판 금리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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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 우리 경제에서 안팎으로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부문은 금융산업이다.

은행.증권.보험 가릴 것 없이 모든 금융기관들이 지각변동에 직면하고 있다.

안으로는 금융기관간의 장벽을 허무는 금융산업개편과 기업 부실화에 따른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밖으로는 시장개방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우리 금융의 변신 현장을 점검하면서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금리를 1% 올리면 직원 9백명의 임금과 맞먹는 수익이 줄어듭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리자유화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예금이자를 얼마나 줘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는 은행들의 속사정이 엿보인다.

이 은행의 저축성예금 규모는 2조7천억원가량. 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2백30억원 정도의 수지악화가 초래 된다.

5대 시중은행 임직원 1명의 연평균 임금 (2천4백90만원) 의 9백20배에 달하는 금액이니 직원 9백명분 임금이 날아간다는 얘기가 실감이난다.

금리자유화는 이처럼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이자의 무서움을 절감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은행의 김승유 (金勝猷) 행장은 "금리 0.1%를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마이크로 금융' 시대가 닥쳤다" 고 말한다.

프로기사 (棋士) 들이 엇비슷한 판세에서 피를 말리는 계가 (計家) 를 통해 승패를 가리듯, 국내 금융기관들에게도 0.1%의 이자에 죽고사는 미세경영의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이달들어 4단계 금리자유화가 실시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여수신금리가 거의 금융기관 자율에 맡겨지면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수신경쟁을 벌이자니 예금이자를 올려줘야 하는데 대출쪽에서는 부실이 많아 영업이 예전처럼 수월하지 않은 때문이다.

따라서 0.1% 금리에 희비가 엇갈릴 가능성도 커진 것. 실제로 지난 14일 부터 은행들이 다투어 선보이고있는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 상품 (MMDA)에는 은행당 하루 평균 7백억원이 넘는 예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하루만 맡겨도 최고 10% 이자를 주기 때문. 그러나 은행들이 대출쪽에서 안고있는 부실 부담 때문에 '출혈경쟁' 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신용은행의 한광표 (韓光彪) 기업지원부장은 "요즈음 난무하는 소문때문에 대규모 자금은 빌려주기가 어렵다" 고 말한다.

이에따라 떼일 염려가 적은 가계대출을 늘려 수지를 맞추고 있지만 품이 많이 들어 벌이가 예전만 못한 것은 물론이다.

종금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은행들의 단기고금리상품개발로 고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것이다.

대한, 동양, 제일, 중앙등 선발전환종금사들은 수수료를 깍아줘서라도 어음관리계좌 (CMA) 의 금리를 현재 10%에서 10.5%로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후발전환종금사들은 은행의 고객을 빼앗아 오기 위해 CMA최저가입 단위를 1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증권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는 9월 주식위탁매매수수료율이 자율화 되면 증권업계의 눈치싸움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D증권사의 경우 수수료율을 0.1%포인트 내리면 현재 20여명인 법인영업부의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야 될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금융자율화가 확대되면서 이같은 '0.1% 싸움' 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내년이후 금융시장 개방까지 본격화되면 국내 금융기관들은 '0.01%의 경쟁' 도 각오해야 한다.

이같은 '마이크로 금융'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합리화로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동안 손쉽게 돈을 벌면서 쌓여온 불필요한 인력이나 경비등의 군살을 잘라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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