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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무림]8.회룡득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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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호성이 들린다.

3백만 방도 (幇徒) 들이 사방에서 외쳐대고 있다.

무림지존! 회창객. 회창객 무림지존! 폭죽이 터지고 꽃잎이 날린다.

쓰러진 유룡 인제거사의 모습이 발아래 보인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서서 보고 있다.

유룡이 자랑하던 세대교체공이 담긴 화살은 내 천주부동공을 뚫지 못했다.

4룡의 합공마저 내 대세초식앞에 허물어졌다.

이겼다.

이긴 것이다.

드디어 여의주를 손에 쥐었다.

이제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온갖 조화를 내 손으로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손을 들어야지, 저 무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줘야지. 연호성이 높아졌다.

그래 그거야. 이제 무림은 내 손짓 하나에 울고 웃으리라. 전음기 (電音機)가 요란하게 울렸다.

비몽사몽간에 회창객은 전음기를 들었다.

음, 또 꿈인가.

연일 계속되는 꿈이군. 나쁘지는 않지만 원,빨리 신한국방 후계자 비무가 끝나야지 매일 같은 꿈만 꾸니. 전음통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겼습니다.

지존. " 지존? 나에게 한 소린가.

잠에서 덜 깬 모양이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 회창객의 몽롱한 의식 속으로 목소리는 이어졌다.

"장섭소검자입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이제 충청무림을 종필노사에게서 빼앗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이 모두 지존의 대세초식 덕분입니다.

" 장섭소검자? 예산벌 전투에서 이겼다고? 그래. 꿈이 아니야. 나는 이미 신한국방 후계자가 됐고 그 여세를 몰아 충청무림판 적벽대전으로 불리는 종필노사와의 싸움마저 이긴 것이군. "수고했네. 그리고 축하하네. " 전음통을 내려놓으며 회창객은 숨을 크게 들여마셨다.

지난 5주야 동안 두번의 전투를 치렀고 이겼다.

그건 무림천하의 운명을 내게 돌려놓는 싸움이었다.

오랜 꿈이 이루어져서일까? 며칠간 통 실감이 나질 않았다.

예산벌 싸움의 승리는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밖으로는 충청무림의 맹주 종필노사의 안방을 점령했다는 재여무림사 초유의 위업을 달성했으며 안으로는 방내 반항세력의 준동을 무마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게 패한 주제에 인제거사는 여전히 목을 뻣뻣이 세우고 수성객은 재야무림과 연쇄 회동을 갖고 있다.

공삼과 내가 그만큼 다독거렸으면 됐지. 뭐 신한국방에 더 이상 절대자는 필요없다고?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대중검자와 종필노사에게 패할 것이라고? 어림없는 소리.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나 혼자서 모든 전투를 치를 수는 없으니.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다.

무림지존 비무대회까지 넉달이 넘게 남았다.

넉달이란 시간은 길다.

충분히 내 스스로 세력과 조직을 다시 만들고 천하의 기인재사를 모두 끌어모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내 앞에서 딴마음을 먹거나 목을 뻣뻣이 세우는 자, 누구든 온전치 못하리라. 종필 노사는 수성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함께 갑시다.

" 수성객은 빙긋이 웃었다.

영남문파를 주축으로 세워진 신한국방에서 영남문파 출신인 수성객이 패했고 충청무림에서 종필노사의 무패신화가 무너졌다.

절대로 패배는 없을 것이라던 두 사람이 회창객에게 차례로 수모를 당한 셈이다.

이를테면 동병상련이란 말이지. "물론입니다.

때가 오면 큰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 힘이 산을 뽑고 기세가 하늘을 덮음. 사마천이 '사기' 에서 항우의 위용을 묘사한 말) 도 오강 (烏江)에서 무너졌소. 패자 (覇者)에겐 천하가 주어지지 않는 법이요. 회창객이 비록 지금은 득세하나 그는 패도 (覇道) 를 걷는 자.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오. 충청무림판 적벽대전이라지만 적벽대전의 승자가 어찌 됐소? 삼국통일을 이룬 건 오히려 적벽에서 패한 위 (魏) 나라였소이다.

" 종필노사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아직 그는 충청무림에서의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다행히 장미제 (長眉帝) 포철공 (浦鐵公) 이 포항벌에서 이겼습니다.

포철공이야 공삼과는 철천지 원수. 공삼과 한 배를 탄 회창객의 옆자리엔 결코 서지 않을 것이오. 결국 신한국방의 텃밭 영남무림이 무주공산이 된 셈이니. 내 이번에는 역으로 그들의 안방을 차지하리다.

내각공으로 삼남 (三南) 무림을 묶고 포철공.대중검자가 가세하면 승리는 여반장이오. 수성객께서 힘이 돼주셔야 겠소. 우리 큰 무림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 수성객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내각공이라. 무림에 뛰어든 지 석달. 회창객에게 참혹한 패배를 당한 후 두 번 지지 않겠다며 창천을 우러러 맹세한 게 엊그제였다.

이길 수 있는 길을 가리라. 그것이 신한국방이든 재야무림이든. 누구도 나를 통하지 않고는 무림지존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임을 알게 하리라. 종필노사의 패배는 그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대통합류 (大統合流)가 재야무림에서도 꼭 필요한 무공이 될 것이므로. "이미 대중검자와도 언질이 있었소이다.

청산 (靑山) 과 녹수 (綠水)가 건재한 데 땔감을 걱정하오리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결코 늦지 않는 법. 노사의 뜻이 저와 같고, 또 대중검자와 같이 하는 한 노사께서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리다. " 대중 검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회창객의 승리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과 종필노사가 직접 예산벌 싸움을 진두지휘했지만 패했다.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괘 (卦)가 좋지 않더니만. 회창객의 운세는 올해 유난히 강했다.

어부지리 (漁夫之利) 계변봉 (鷄變鳳) - 남의 싸움을 통해 이득을 얻고 닭이 봉황이 되는 격이라. 흙 (土) 의 기운을 타고난 자니 쇠 (金) 의 기운이 받쳐주면 금상첨화일터. 마침 올해는 쇠의 기운이 극성한 해니 지금까지 회창객의 승승장구는 무공과 실력보다는 하늘의 운이 따라준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천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공과 실력. 회창객의 얄팍한 솜씨로는 결코 무림지존좌를 차지하지 못하리라. 시기가 나빴어. 막 끝난 신한국방 후계자 싸움으로 강호백성들이 현혹된데다 회창객의 선영이 예산벌에 있다는 게 패인이었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재여무림에만 초점을 맞춘 무림언론의 보도초식도 재야무림의 패배에 한몫 했다.

지독한 작자들. 단 한번도 재야무림의 편에 서지 않는군. 그런 편파적인 취재공에 껌뻑 넘어간 강호백성들에 생각이 미치자 대중검자는 갑자기 서글퍼졌다.

공삼의 문민공이 얼마나 형편없는 무공이고, 그의 신한국방이 얼마나 무림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회창객의 손을 들어주다니. 우매한 백성들이여, 너희가 언제나 제 손으로 새 무림을 만들어 내려는가.

성수교가 끊어지고 삼풍루 (三豊樓)가 무너지던 고통을 너희는 다 잊었는가.

일취월장하던 무림경제가 한보문 비리다 세계화다 해서 곤두박질한 게 누구 때문인가.

그런데도 어째서 너희 백성들은 중원무림사가 50년이 넘도록 재여무림에 의해서만 쓰여지도록 하는가. "그러나…. " 대중검자는 이를 악물었다.

회창객의 모든 것을 파괴하리라. 무림초년병에게 험난 강호의 맛을 알게 하리라. 이미 회창객의 모든 무공이 해부됐고 온갖 약점이 손금 보듯 노출됐다.

그를 거꾸러뜨리는 일은 집요하게 철저히 그리고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 지존비무까지는 넉달이 넘게 남았다.

넉달이란 시간은 길다.

천하의 운명을 몇번이고 바꿀 수 있는 시간. 우선 회창객에게 반발하는 신한국방의 절대고수가 내게 올 것이며 안방에서 패한 종필노사가 흔쾌히 가세하리라. 또 포철공이 영남무림을 들고 오리라. 지금 강한 운만 믿고 욱일천하 (旭日天下) 의 달콤함에 빠져있는 회창객은 곧 어둠이 멀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인제 거사의 청룡사자후 (靑龍獅子吼) 는 정말 무시무시하더군. 난 꼭 회창객이 지는 줄 알았지 뭐야. " 장삼 (張三) 의 말에 이사 (李四)가 맞장구를 쳤다.

신한국방 충청지부의 향주 (鄕主) 인 두 사람은 후계자 비무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두고두고 그날 일을 되새기는 중이었다.

"회창객의 판관필이 급소를 치고 들어오니 인제거사의 세대교체공도 힘을 못쓰지 않던가.

대세초식의 그 절묘한 배합이며 파괴력은 인정해야겠어. 무공을 배운 지도 얼마안되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싸움을 잘하지?" "1차 비무가 끝난 뒤 한동거사와 인제거사가 재비무를 벌이지 않고 곧바로 4룡 합공이 제대로 펼쳐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회창객이 이겼을까?" "그랬을 걸세. 워낙 4룡이 각기 다른 무공을 익혀 격체전력 (隔體傳力 : 몸을 격해 타인에게 무공을 전해 줌) 이 잘 안된 것 아닌가.

세대교체지역주의정통민주민정공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내 그런 무공이 있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네. 억지로 네 사람 무공을 묶었으니 합력 (合力) 이 안되고 합력 없는 합공이란게 어디 힘을 쓸 수나 있나. " "그나저나 어제 예산벌 싸움마저 이겼으니 이제 회창객의 무림지존 등극은 떼어논 당상이겠지?" 장삼 의 말에 이사가 제동을 걸었다.

"어허. 성급한 소리. 본시 무림의 일이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법. 재야무림이 이번 패배로 똘똘 뭉칠걸세. 대중검자나 종필노사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들이네. 절대 간단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네. 게다가 민심은 조변석개니 안심할 게 못되고. " "아니, 그럼 자네는 우리 신한국방이 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꼭 그렇다는게 아니고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얘길세. 재야무림의 결속을 막고 강호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거지. " "자네, 그놈의 민심 무척 좋아하는군. 무림에선 조직과 세력만 강하면 그만이지 무림지존비무가 무슨 선거라도 되는 줄 아는가? 민심을 찾게. 지난번 우리 방 후계자 싸움때도 밤새 '민심대로' 를 외치더니 결과가 어떻게 됐나? 뭐니뭐니 해도 무림에선 힘이야 힘. " "그때와는 달라. 천하의 주인 자리를 놓고 싸우는 걸세. 하늘의 뜻을 얻는 자 만이 이길 수 있네. 하늘의 뜻은 곧 민심이고. " "그래도 힘이 먼저야. 조직과 세력이 곧 힘이고. " "민심이라니까. " "힘. " "민심. " "힘. " "민심. " 두사람의 설전은 무림지존비무가 끝나는 연말까지 이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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