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위대법 재개정 추진 뭘 노리나 …개헌론 불지피기 전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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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반도 긴급사태' 와 '자국인 구출' 이라는 두 가지 명분을 내걸고 일본 자위대가 착착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미.일 방위협력지침 (가이드라인) 개정작업도 '한반도 유사시' 가 명분이다.

미국을 방문중인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자민당간사장은 22일 윌리엄 코언 미국방장관과 만나 양국의 이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위대의 C - 130 수송기는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패전후 처음으로 자국인 구출을 구실로 해외 (태국)에 출동했다.

94년11월 개정된 자위대법에 따른 이번 출동은 그러나 구출활동 자체보다는 선례를 남기려는 목적이 더 커 보인다.

일본 정치권은 나아가 자위대함정도 외국에 파견할 수 있도록 자위대법을 또다시 개정할 태세다.

일본국회가 94년 자위대법 (100조8항) 을 개정할 때는 북한핵 문제를 둘러싸고 93년부터 조성된 긴박한 분위기가 반가운 원군 (援軍) 역할을 했다.

한반도유사시에 한국내의 일본인을 신속히 구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지 않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는 사회당 (현 사민당) 등의 강력한 견제덕분에 운송수단을 수송기로 한정하고 그것도 '수송상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인정될 경우' 에 한해 파견할 수 있도록 비교적 엄격히 제한했다.

이는 비록 군용기라 하더라도 인도적인 임무를 띤 비무장수송기는 다른 나라의 반발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일본국내에서의 위헌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자민당내에서는 "위험하지 않은 분쟁지역이 어디 있는가" , "민항기 아닌 군용기를 보내면서 안전확보를 조건으로 다는 것은 모순" 이라는 반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자위대법 재개정움직임은 자위대 함정파견허용이 초점이다.

이번에도 명분은 한반도유사시에 대비한다는 것.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나 가지야마 세이로쿠 (梶山靜六) 관방장관 등은 "수송기로는 많은 인원을 안전지대로 옮길 수 없다" 며 법개정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C - 130 수송기는 한번에 85명밖에 실을 수 없지만 일본의 최신예수송함 '오스미 (8천9백급)' 는 승무원을 빼고도 한꺼번에 1천명 이상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분쟁지역에서 자국민을 신속히 구출하기 위해 유효한 수송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일본정부.정치권의 주장은 맞는 말이다.

해외자국인을 위해 전투행동도 불사하는 다른 선진국들과의 형평론도 아주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위대법같은 하위법률이 야금야금 개정되는 사이에 현행 평화헌법은 점차 껍데기만 남아 결국 개헌무드가 굳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그래서 드는 것이다.

법개정후 실제로 한반도주변에 함정이 파견되더라도 문제가 많다.

수송함이라도 기관포정도는 장착돼 있기 때문에 엄연히 '무기' 를 갖고 해외에 출동하는 셈이다.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호위함 없이 수송함만 분쟁지역에 들어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 지적한다.

자위대함정이 본격적인 전투에 '말려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공동대처하게 될 우방이다.

그러나 자위대의 족쇄가 자꾸 풀리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도쿄 = 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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