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분양원가 공개 실익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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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놓고 시비가 분분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필자도 이에 동감이다. 그러나 일반 독자는 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원론적인 해설을 하고자 한다.

아파트 분양가격은 수요와 공급 관계를 반영한다. 그런데 수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집이 필요한 사람들의 실수요고, 다른 하나는 투기적 수요다.

아파트를 공급하는 건설업자가 구입하는 토지 가격은 위치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고 그것 또한 시장 실세를 반영한다. 그러나 업자는 쉽게 팔릴 만한 지역에 아파트를 짓고 주로 품질과 가격면에서 경쟁한다. 그래서 필요한 곳에 아파트가 생기고 품질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해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면 업자들은 더 많은 주택을 짓고자 한다. 공기업인 주택공사도 수익이 증가하면 서민용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주택 가격이 너무 올라 실수요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고, 둘째는 원가를 초과한 이윤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는 것이다. 건설업자는 청약자를 모집할 때 이미 매도가격을 결정해 놓으므로 전매 차익은 주로 투기업자의 몫이 된다. 셋째는 투기수요 자체의 함정이다. 실수요보다 투기수요가 많은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언젠가는 입주자 부족과 가격 하락, 건설 불경기, 금융 부실 채권 증가 등의 혼란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는 길은 우선 투기수요를 배제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시장원리에 맞게 하는 것이다. 즉 토지를 포함한 부동산 시장을 제도화해 (필자는 부동산거래소를 만들자는 제언을 한 적이 있다) 부동산 매매를 경매에 부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낙찰 가격이 공급자가 신고한 예정가 혹은 청약가를 초과하면 그 초과액을 세금으로 흡수해 임대주택건설기금에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투기의 묘미가 없어지므로 투기수요가 감소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다. 주택기금과 관련한 초과이윤은 투기수요뿐만 아니라 부동산의 위치(학군, 교통 편의, 주위 환경 등) 및 기타 조건에 따라 발생할 수도 있다.

이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원가 공개 주장은 문제의 소재를 잘못 짚은 것 같다. 먼저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목적은 아파트 가격을 통제하자는 것인데 그것은 가격결정을 시장이 아니라 소수인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난날 서민 보호의 이름으로 택시 요금을 공무원들의 결정에 맡긴 결과 택시 잡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공급이 위축되고 내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다음에 공개한 원가에 입각해 아파트 가격을 인하했다고 하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한 그 아파트를 산 투기업자는 보다 높은 값으로 전매해 이득을 보려 할 것이고 2차로 아파트를 산 사람은 여전히 높은 값을 치르게 된다. 그에 더해 가격 통제로 공급마저 감소한다면 아파트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다.

경영 투명화를 위해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공개가 필요한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전산망을 통해 학생들의 성적을 공개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지 않았는가. 기업이 자신의 기술이나 영업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면 경쟁의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의 원가를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결론적으로 투기수요를 배제하고 공급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며, 과다 이윤이 발생하면 그것을 국고로 환수해 임대주택 건설에 투입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덕우 前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