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熱帶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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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대야 (熱帶夜)가 열대지방의 밤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오죽 좋을까. 야자수 그늘아래 파도가 철썩이고 어디서 훌라춤의 멜로디라도 들리는…. 그러나 북위 38도선상에 위치한 나라의 열대야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한다.

섭씨 36도까지 올라가는 낮기온은 한여름이라 그렇다 쳐도 밤기온이 25도를 넘는다니 그야말로 적도 (赤道) 의 기온을 옮겨다 놓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올해의 열대야는 예년보다 4~5일 빠르다니 이런 것조차 빠를 이유가 무엇인가.

고온다습한 기후는 불쾌지수까지 높여 어느 가스 배달원은 홧김에 가스통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참자 참아.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무더위를 이기는가 지혜를 들어 보자. 전문가들은 우선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과 꾸준한 운동을 권한다.

해질 무렵의 가벼운 산책이나 조깅, 운동후에는 약간 더운 물로 샤워, 그리고 숙면을 취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잠이 안온다고 술을 마셔? 그건 안되지. 전문가들은 음주후 취침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술은 체온을 높여 땀을 더 흘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숙면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집집마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어대니 전력소비량은 나날이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1일 오후5시에 3천4백20만㎾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지난 6월18일의 최고기록보다 30만㎾ 많은 것이다.

열대야를 더 참기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이때 일어난다.

전력 과부하 (過負荷) 로 곳곳에서 정전소동이 일어났다.

어느 병원에선 2시간동안 전기공급이 안돼 7백여명의 환자가 곤욕을 치렀다.

대구 어느 아파트단지에서도 전력이 끊겨 1만여명이 하룻밤동안 무더위와 사투 (死鬪) 를 벌였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수돗물까지 끊긴 상황도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더위를 못참아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든 소년이 숨을 거뒀다.

물놀이 가서 익사한 경우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사신 (死神) 을 불러들이는 것이 바로 무더위라는 점을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계속 땀이 나니 왕짜증만 나고, 잠을 못잤으니 졸음만 쏟아진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흘리는 땀으로 행복하게 되고, 잠자리를 좋아하면 빈궁하게 된단다.

그러니까 열대야라도 참고 견디라고? 사람 죽여주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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