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날 수 있는 새는 날려 보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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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구(61) 하이마트 사장은 신지애 선수를 떠나 보내며 아쉬움이 많았다. 그것도 잠시, 그는 ‘혼자 날 수 없는 새’를 보살피는 게 철학이라며 하이마트 소속 선수들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다. 그의 유별난 선수 사랑에 조만간 제2, 3의 신지애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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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키워 시집 보내는 느낌입니다. 하이마트 모자를 안 쓴 신지애 선수,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

1월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본사에서 만난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신지애(21) 선수에 대한 하이마트의 3년 후원 계약은 지난해 말로 끝났다.

선 사장은 “신지애는 골프 실력은 물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훌륭한 성품을 갖췄다. 더 넓은 세상에서 지금보다 더 잘해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지애는 지난해 한국여자골프협회(KLPGA) 대회 7승과 미국여자골프협회(LPGA) 대회에서 3승을 올리며 하이마트를 국내외로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하이마트로선 재계약에 욕심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선 사장은 ‘큰 선수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신인 선수 발굴이 하이마트 골프단의 첫째 원칙이라는 점도 떠올렸다.

골프단 창단 취지에 대해 그는 “우리는 신인을 찾아내 큰 선수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LPGA에 진출하더라도 미국 무대에 뿌리 내릴 때까지만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혼자 날 수 없는 새는 보살피되, 자력으로 비상할 수 있으면 언제든지 놔준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선 사장과 신지애 사이는 각별하다. 평소에도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다. 하지만 신 선수를 풀어주는 게 그를 더욱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소렌스탐이나 오초아에 버금가는 선수로 성장한 신지애에겐 더 큰 기업, 더 큰 스폰서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스타가 된 신지애를 후원할 돈은 신인 30명을 키울 수 있는 액수다.

2002년 창단한 하이마트 골프단은 국내 첫 여자프로골프단이다. 선 사장은 “하이마트의 주 고객인 여성들에게 어떤 지원을 할지 고민하다 골프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여자 선수를 발굴해 후원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 후 우리는 하루 하루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린 선수들이 마음 놓고 공을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창단 9년째 접어든 하이마트 골프단은 ‘한국 여자골프 사관학교’란 별칭을 갖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25개 KLPGA 대회 가운데 무려 11승을 기록했다. 신지애가 7승을 거뒀고 안선주, 유소연, 김혜윤, 오채아 선수가 각각 1승씩 올렸다. 선수단 운영비는 연간 30억 원 정도.

골프 업계는 지난해 11번의 우승으로 약 300억 원의 광고 효과를 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열 배나 남는 장사는 했다는 자체 계산이다. 하이마트 골프단이 탁월한 성적을 올린 이유에 대해 선 사장은 ‘골프 성적은 선수 마음이 얼마나 편한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프로 골프선수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고 있는 선수가 꽤 있지요. 그래서 인간적으로 잘해 주고 싶습니다.”

하이마트는 소속 선수가 우승하면 그날 저녁 선수들의 가족을 모두 초대해 함께 회식을 한다. 성적 부진으로 고민하는 선수에겐 선 사장이 문자를 보내 “다른 선수보다 조금 늦게 재능이 발휘될 뿐이니 너무 초조해 하지 말라”고 격려하곤 한다. 실제로 하이마트 골프단은 성적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를 함께 끌고 가는 ‘철밥통’ 골프단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넉넉한 경영 철학이 선수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2부 리그 출신의 조영란 선수는 하이마트 골프단에 합류한 지 2년이 지난 2007년 첫 승을 올렸다. 지유진 선수는 입단한 지 3년 만에 첫 승을 기록했다. 선 사장은 지 선수의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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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열린 SBS 골프 최강자전이었습니다. 연장전 끝에 지 선수가 승리하자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기쁘더군요. 경기가 끝난 뒤 그의 가족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장하다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인성이 뛰어난 선수를 선호하는 하이마트의 선수 발탁 기준도 선수단의 가족적인 분위기에 기여하고 있다. 3년 전 무명이던 신지애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은 하이마트뿐이었다.

선 사장은 어려운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따뜻한 선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영입을 결정했다. 그는 “선·후배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평가가 금방 나온다. 당연히 선수단 분위기도 좋다”고 말했다.

주요 대회가 열리면 선 사장은 임직원과 함께 응원에 나선다. 정병수 하이마트 전무는 “18홀을 모두 따라다니며 응원하는 CEO는 국내에서 선 사장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속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 기간이면 전국 260개 하이마트 매장에 있는 2만 개의 TV 채널이 고정된다.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소속 선수를 응원한다. 우승한 선수에겐 상금의 50%를 별도의 인센티브로 준다. 2~5위까지는 30%, 10위까지는 20%를 지급한다. 다른 골프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원이다.

1인당 3000만 원 상당의 골프용품 구입 비용도 매년 제공한다. 여기에다 선수들의 집으로 노트북 컴퓨터, 휴대전화 심지어 김치냉장고도 보내주곤 한다. 물심양면으로 선수단을 지원하자 하이마트 골프단은 중·고등학교 유망주들에게 인기 최고다. 지난해 하이마트에 입단한 10대 골퍼 네 명이 모두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유소연·오채아·김혜윤 선수가 우승을 했고, 편애리 선수는 2등만 두 번 했다. 선 사장은 “우리 선수들이 우승에 자만하지 않고 노력을 계속하면 제2, 3의 신지애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애에서 보듯 하이마트 골프단의 뚝심과 노력은 유명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때에 우리 선수들이 국민 여러분께 더 많은 희망을 선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조용탁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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