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이적생들 독기 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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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야, 성식이형 갔냐. " "아니. " "아휴, 또 죽었구나. " 매일 저녁 서울송파구방이동 LG 숙소에선 선수들의 수군거림이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SBS에서 이적한 오성식이 오후8시가 되면 어김없이 2층 체육관에 불을 켜고 개인훈련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왕고참' 이 훈련을 하는데 새까만 후배들이 숙소에 편안히 누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마지못해 볼을 들고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

오성식이 이적한뒤 LG 체육관은 밤에도 불이 꺼진 적이 없다.

야간훈련에는 오성식과 동갑내기인 윤호영까지 가세, 살벌한 경쟁이 펼쳐진다.

삼성에서 이적한 윤은 오성식과 같은 가드여서 밀릴 수 없다는 각오다.

이 때문에 슛 한번이라도 더 던지려 안간힘을 쓴다.

오성식과 윤호영의 가슴속에 이글거리는 것은 '오기' 다.

자신들을 트레이드한 전 구단측에 "나를 판 것을 후회하게 만들겠다" 는 각오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이충희감독은 은근히 미소짓는다.

"고참선수들이 무서워 후배들도 게으름을 부리지 못하니 이것만 해도 트레이드 효과는 만점 아니냐" 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지훈련중인 대우의 조현일.허기영도 마찬가지. 기아에서 이적한 이들도 선수생명을 걸고 훈련에 뛰어들고 있다.

센터 조현일은 기아에서 용병과 고참 김유택 때문에 자리잡지 못했고,가드 허기영은 허재.강동희 때문에 결국 트레이드됐다.

이들은 대우에서마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설곳이 없다는 절박함에 전에 없이 눈매가 사납다.

이적생들의 독기어린 분발이 다음 시즌 프로농구 판도에 어떤 결과를 빚을지 흥미롭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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