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바다에 갇힌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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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반도인 우리나라는 북쪽이 대륙에 연해 있고 3면은 바다로 돼 있어 대륙으로도, 바다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 우리들은 초등학교시절에 이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런 지식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의 이런 지식과 인식이 현실과 정확히 부합하는 것인가.

답은 '아니오' 다.

우선 남북분단으로 북쪽 길은 꽉 막혀 있다.

이는 통일이 되면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치고 접어둔다고 해도 3면이 바다여서 의지만 있다면 마음대로 바다로 진출할 수 있다는 설명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동.서.남 3면이 바다로 열려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UN해양법협약에 따라 각국은 2백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 (EEZ) 을 설정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서해와 동해의 폭은 4백해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남해의 경우는 더 심해 대마도까지의 최단거리는 불과 23해리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중국.일본이 모두 EEZ를 설정한다면 겹칠 수밖에 없어 협상을 통해 경계선을 획정해야 한다.

3면이 바다로 열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와의 협상이 없이는 옴치고 뛸 수도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래서 해양법전문가들은 우리나라를 'Sea locked country' 라고 표현한다.

바다로 열린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바다에 의해 '갇힌 나라' 라는 뜻에서다.

이런 여건을 놓고 볼 때 해양주권의 확대와 강화문제는 국가의 흥망과 연관되는 문제다.

따라서 이 땅의 정치지도자라면 이런 문제에 대한 지식과 주견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해양주권의 중요성에 대한 정치지도자들의 인식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욱 더 엷어지기만 했다.

이승만 (李承晩).박정희 (朴正熙) 두 전직 대통령은 똑같이 독재자로 비난받고 있지만 해양주권에 관한한 그 다음 어느 대통령보다 깊은 관심과 강한 의지를 지녔고 뚜렷한 업적도 남겼다.

'평화선' (이승만라인) 선포나 독도점유는 50년대 당시에는 무모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선점' (先占) 과 '실효적 (實效的) 지배' 를 중시하는 국제관행에 비춰볼 때 그런 조치들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국익에 기여할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 역시 중국.일본보다 재빨리 해저광구를 설정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선점' 의 이점을 누릴 수 있게 했고, 조선업.원양어업을 일으켜 해양국가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들은 전임자들이 이룩한 업적을 발전시켜 나가기는커녕 해양주권문제를 외무부나 해양부의 과장급 실무자가 주물럭거리는 문제쯤으로나 여길 만큼 이 문제에 관해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그 무관심과 무지의 연장선에서 빚어진 것이 바로 지난 6월8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우리 어선납치행위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초 직선기선이 주요내용인 영해법을 제정했고, 7월20일에는 그 시행령을 제정했으며, 올해 1월1일부터 그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무얼했던가.

기껏 실무차원에서의 문제제기나 했을 뿐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기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해양법전문가들은 실은 중국과의 영해관계협상이 더 중요하고 까다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에는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이기에 중국어선들은 우리 영해안에서 불법조업은 물론 해적질까지 태연히 하고 있다.

정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마도 정부는 4자회담 성사를 위해, 또는 북한견제를 위해 일본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의 비위도 맞추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해양주권을 방기 (放棄) 한다는 것은 역사에 한 (恨) 을 남길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북한이야 언젠가는 우리 땅이 되겠지만, 북한 견제하느라 포기한 해양주권을 되찾기란 통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걸 알아야 한다.

지금 해양주권은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없이 정부책임자들은 4자회담 성사와 같은 단기업적에나 매달려 있고 다음 정권을 맡겠다는 사람들은 어선이야 납치되든 말든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으니 참으로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이다.

유승삼 중앙 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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