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 바다 분쟁 …EEZ 시행 눈앞 근본대책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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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측의 잇따른 한국어선 나포로 한.일간에 마찰음이 요란하다.

그러나 일본측의 성급한 선제행동에서 시작된 이번 분쟁은 딱 떨어지는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은 물론이지만 같은 고민을 일본측도 안고 있다.

자의적으로 설정한 직선기선을 고집하며 한국배와 선원을 자꾸 나포해 봐야 한국의 강력한 반발로 외교적 부담만 쌓이고 결국 양국관계 전반을 훼손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분쟁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양국 외무장관은 이달말 동남아국가연합 (ASEAN) 확대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따로 만나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태의 진행추이와는 별도로 한국측은 냉정하고 전략적인 대응자세와 함께 '바다분쟁' 의 국제적인 흐름을 내다본 나라안팎에 걸친 대비책을 지금부터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8일 한국어선 (오대호) 이 처음 나포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해양전문가들은 "배타적 경제수역 (EEZ) 의 본격 시행이라는, 코앞에 닥친 폭풍에 비교하면 이번 사태는 솔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고 말한다.

일본측의 나포행위나 선원들에 대한 인권유린 문제가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라 EEZ 확정후 한국수산업계에 닥쳐올 거대한 충격파를 강조한 말이다.

2백해리로 돼 있는 EEZ를 시행할 경우 동해.서해를 일본.중국과 절반씩 나누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수산업계는 연간 5천억원 가량의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추계가 나와 있다.

동해에 출항하는 한국어선중 어림잡아 3천척은 일손을 놓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일방적 직선기선 획정과 나포행위에는 그것대로 단호히 대응하면서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EEZ에 대비한 수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반도 주변 바다환경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EEZ 시행을 앞두고 '자칫하면 제2의 우루과이 라운드 (UR) 사태' 가 초래될지 모른다는 걱정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그동안 한.일간 '바다싸움' 의 쟁점은 어업협상과 EEZ경계선 획정협상을 통해 다양하게 불거져 나왔다.

독도주변 수역문제, 연안국주의.기국 (旗國) 주의 여부나 이번에 나포사건으로 표면화한 일본측 직선기선의 정당성 시비가 대표적이다.

이중 연안국주의는 국제적 추세에 따라 양국 어업협상의 실무단계에서는 사실상 합의된 사안이다.

직선기선도 일본측의 선긋기에 문제가 있으나 그 자체는 국제적 흐름이고 한국도 이미 채택 (77년) 했다.

UR사태의 교훈에서 보듯 세계적 변화추세에 당면해서는 그 흐름에 빨리 대비하면서 실제 협상단계에서 자국이익을 최대한 얻어내는 자세가 국익을 좌우한다.

일본근해에서 한국어선들이 올리는 어획량이 연간 20여만, 한국근해에서 중국어선들이 잡아 가는 양이 약 10만이라는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내에는 '당분간은 현상유지가 최선' 이라는 인식이 많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이 한국과의 어업협정 제정에 소극적이라는 사정도 가세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2백해리라는 광대한 해역의 자원을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EEZ 관련협상은 독도주변수역 처리등 난제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본격화한 바다분쟁에서는 무엇보다 불필요한 감정적 대응으로 협상테이블에서의 운신폭을 스스로 좁히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적 강경발언도 되레 자충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도쿄 = 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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