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측근들, 관례 깨고 오바마 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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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릴레이 비난에 나섰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권력에서 물러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오바마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물러난 전 정부 인사들은 통상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간은 새 정부를 직접 비난하지 않는 게 미 정계의 전통이었다. ‘허니문 기간’으로 간주해 새 정부의 정착에 힘을 보태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전 정부의 각종 정책에서 급격하게 이탈하는 데다 새 정부 각료 내정자들이 도덕성 문제로 흔들리자 부시 진영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들의 공세는 오바마 취임식 직후부터 조짐을 보였다. 캐런 휴즈 전 국무부 차관은 지난달 20일 “취임사는 불쾌하고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 있었고, 관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혹평했다. 부시 선거캠프서 홍보담당이었던 마크 매키넌은 “불필요한 내용과 다른 곳에서 베낀 아이디어로 가득 찬 취임사”라고 인터넷 블로그에 적었다.

그러다 새 정부 출범 후 보름 만인 4일부터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부시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앤드루 카드는 이날 TV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복장을 문제 삼았다. 부시가 집무실에서 항상 정장 차림을 한 것과 달리 오바마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오벌 오피스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이 보도된 것을 놓고서다. 카드 전 실장은 “대법원과 상원·하원에도 복장 규율이 있듯이 대통령 집무실에도 복장 규율이 있어야 한다. 오벌 오피스의 권위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복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부시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은 같은 날 오바마의 외교노선을 맹공했다. 그는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부의 유화정책이 핵무기와 생물무기를 동원한 테러공격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부시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앨버토 곤잘러스는 NPR(National Public Radio) 방송에서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새 정부의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테러용의자 신문 방식이 ‘고문’이라고 지적하자 곤잘러스는 “정보기관 요원들의 사기를 꺾어놓는 발언”이라고 공격했다.

전 백악관 정치고문 칼 로브는 폭스TV에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과 각료 내정자들의 세금 불성실 신고를 맹비난했다. 새 정부의 고문 금지에 대해선 “미국을 훨씬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시 진영의 줄비난에 대해 “정치 도의에 어긋났다”는 비판론과 “부시의 유산을 지켜내려는 방어책”이란 옹호론이 함께 나오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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