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국내외 현실 외면한 공무원감축론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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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몇달전 어느 경제단체 부설연구소가 우리나라 공무원 수를 90% 줄여도 된다 해서 화제가 되더니, 최근 다시 54만여명 (전체의 58.6%) 을 줄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행정분야를 아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 현 공무원 총수는 93만2천여명인데 이는 공무원이라 불리는 입법.사법.행정부의 모든 인력을 포함한다.

이중 교육공무원만 28만6천여명, 경찰.소방공무원이 11만명이다.

교육.치안.소방 업무를 줄이거나 없애지 않는 한 이들 39만6천여 공무원은 필요하다.

이들을 뺀 나머지는 중앙과 지방을 통털어 53만6천명이다.

54만명을 줄인다면 나머지 공무원은 하나도 없게 되는데, 그러면 외교.재판.징세.환경보존은 누가 하나. 둘째, 위 연구소는 영국이 인구 1백18.8명당 공무원 1인인데 한국은 49.2명당 1인이므로 영국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도 54만명을 줄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영국의 통계수치가 잘못돼 있다.

영국은 인구 14.2명당 공무원 1인이다.

1백18.8명당 1인은 중앙공무원, 그것도 지방정부 소관인 교육.경찰등은 제외한 수만을 넣고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의 인구 대비 공무원 수는 영국을 포함해 어느 선진국에 비해도 적다.

셋째, '작은 정부' 를 지향한다고 해서 늘려야 할 공무원도 못늘리는 것은 곤란하다.

현정부 출범후 늘어난 국가공무원은 교원 (7천4백여명) 과 경찰 (3천1백여명) 이 대부분이다.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늘어나는 치안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증원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1만5천여명의 국가직을 지방직으로 전환한 결과 국가공무원 총수는 오히려 줄었다.

국가직이 지방직화된 경우를 제외하고도 지방공무원은 2만8천여명의 순증이 있었다.

이중 일부는 지방기능의 확대에 기인하지만, 나머지는 그렇다고만 볼 수도 없어 비판의 소리를 안고 있다.

이런 점들을 알고 보더라도 정부의 인력관리에는 분명 문제가 많다.

첫째, 인력배분이 잘못돼 있다.

국민 입장에서 필요성도 별로 없는 일에 많은 공무원이 매달려 있는가 하면, 정작 필요성이 큰 일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필요이상의 규제나 각종 단체에 대한 지원이 전자의 예다.

오염방지, 식품안전, 유흥업소 중.고생 고용 방지, 부실공사 방지, 공교육 건실화 등은 후자의 예에 속한다.

둘째, 공무원의 전문성.책임성이 떨어진다.

민원인이 행정기관에 뭘 물어봐도 속시원한 대답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답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열심히 알아보고 답해주려는 자세도 부족하다.

셋째, 현장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고위직과 내근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다보니 실제 국민앞에 나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공무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일이 탁상에서만 이뤄지니 계획 따로 집행 따로가 된다.

하상묵 한국행정硏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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