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아비뇽 국제연극제 10만 인파 성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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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프랑스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아비뇽이 7월을 맞아 거대한 연극무대로 탈바꿈했다.

올해로 51주년을 맞은 아비뇽 국제연극제는 대대적인 5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지난해의 열기가 조금도 식지 않은채 계속되고 있다.

교황궁과 시청광장등 이 도시의 공간이란 공간을 모조리 메운 공연무대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0만이 넘는 관람객들로 물결치고 있다.

더위가 물러간 지중해의 차가운 밤. '아비뇽 유수' 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교황궁 뜰에 마련된 야외무대는 총총한 별과 하늘을 지붕 삼아 모여든 관객들이 넋을 잃고 러시아 '포멘키' 극단의 '바냐아저씨' 를 지켜보고 있다.

'죽기에 이르고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중년 주인공이 토해내는 독백은 모두의 마음에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무대란 삶의 온갖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입니다.

" '포멘키' 극단의 극장장 표트르 포멘코 (52) 씨는 요즘같은 시대에도 연극이 사랑을 잃지않는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체호프등 정통 러시아 리얼리즘극으로 이번 연극제에 참가한 '포멘키' 는 러시아연극의 특징인 헐벗은듯 단순한 무대와 부족한듯 꾸밈없는 연기로 서구무대에서는 보기 드문 신선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못지 않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있는 또다른 극단은 프랑스의 '징가로 (집시란 뜻)' .거처없이 프랑스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이 기마 (騎馬) 극단은 말과 인간이 함께 연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징가로' 는 이번에 한국 국악인들과 합동으로 인간과 원시의 조화를 표현한 '에클립스 (日蝕)' 를 공연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본지 14일자 22면 참조) .12명의 무용수와 26필의 말이 펼치는 환상적인 에로스는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번 아비뇽 연극제의 전반적인 특징은 무대의 중량화에 있다.

주최측이나 관객 모두가 실험극이나 가벼운 멜로물보다는 무겁고 심오한 작품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있다.

특히 퀘벡출신 예술감독 드니 마를로가 선보인 레싱 (1729~1781) 의 '현자 (賢者) 나탄' 은 유대교와 이슬람, 기독교간 화합을 호소하는 무운시 (無韻詩) 로 다가오는 세번째 밀레니엄을 휴머니즘으로 열자는 메시지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성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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