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미술품 설치의무 폐지해야 - 근시안적 규제에 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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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정부는 일정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짓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미술 장식품을 설치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건축물을 짓고자 하는 국민이 겪어야 하는 13종의 심의중 하나가 미술 장식품 심의다.이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예로서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

미술 장식품 설치를 강제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아름다운 건축물 자체가 미술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우도 흔한데 미술장식품을 별도로 설치하라는 것은 무언가 지나친 규제다.건물을 세우고자 하는 국민은 누구나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자 한다.도시 경관이 목적이라면 규제가 없는 것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실효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부조리를 조장한다.한 예로 건축비용이 1백억원인 건물의 경우 1억원 상당을 미술장식에 사용해야 하는데,실제로는 2천만~3천만원만 지급하고 1억원으로 된 계약서를 시.도및 지방국세청에 제출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하니 실제 미술장식에는 20~30%만 투자되고 나머지는 검은 돈으로 사용된다.미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상당한 낭비가 있다.심의로 야기되는 완공 지연을 감안하면 그 낭비는 더 커진다.

셋째,심의라는 절차는 접촉과 부패를 낳는다.미술장식품의 설치 강제는 심의과정에서 특정 작품을 강매하는 부조리를 초래할 수 있다.일정 기준 이상의 유자격자는 심의 없이 해당행위를 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미술장식이란 규격을 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러한 심의 자체를 없애는 것이 타당하다.

넷째,국민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왜 하필이면 건축물을 짓고자 하는 국민들만이 예술 창작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예컨대 연건평이 1만평방 이상인 건축물은 미술장식을 위해 건축비용의 1%를 강제로 추가 부담해야 하는데 연건평 9천9백99평방까지는 그런 의무가 없다.이는'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조항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부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킨다는 목적은 그것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제대로 달성되지 않는다.건축주는 다수의 사용자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기 때문이다.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미술장식품 설치를 강제하는 것은 중단돼야 한다.

회화.조각.공예등 미술활동을 권장하는 것에 국민적 합의를 이룬다면 모든 국민이 낸 세금중에서 필요한 만큼을 미술활동에 지원되도록 할 일이다.총액 얼마를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의 미술활동을 위해 지원할 것인가를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정하고 예산으로 반영하는 방법밖에 없다.누구든 큰 건물을 짓는 국민은 건축비용의 1%를 미술 장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식으로 얼마일지도 모를 총액을 예술 창작을 위해 지원하도록 강제해서는 안된다.

상장기업 매출이익률의 평균이 2%가 채 안되는 것을 감안하면 건축비용의 1%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미술장식을 공급하는 소수의 국민들이 건물을 짓거나 이를 사용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대해 그런 엄청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규제가 모여 우리는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국민 각자가 다른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고 자력으로 자기의 존재가치를 다른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할 때 모두가 잘 살게 된다.

권회섭 경기화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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