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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관계 찬바람 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독.불관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미지근한 정도를 지나 냉랭한 관계로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경제정책에서 안보정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갈등이고 마찰이다.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혀가며 다투더니 이번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문제로 서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이러다 아예 갈라서는게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이 갑자기 독일을 방문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아침 일찍 본에 도착한 베드린 장관은 헬무트 콜 총리와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클라우스 킨켈 외무장관과는 오후 내내 자리를 함께 했다.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본 교외를 산책하는가 하면 라인강 유람까지 함께 하며 두사람은 양국관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하지만 독.불관계는 이미 회복이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양국 언론은 진단하고 있다.지난 1일 파리에서 열린 독.불관계 심포지엄에 참석한 양국 정치인들의 일치된 인식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독.불관계-부부싸움인가 이혼인가'라는 심포지엄의 제목 자체가 상징적이었다.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제1서기대행은“독.불 특수관계는 깨졌다”고 선언했다.자크 랑 프랑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양국관계가'암초'에 걸린 것으로 묘사했다.독일에서 온 캬를 라메르스 기민당 외교정책위 간사는“안보.경제정책과 같은 기본분야에서 신뢰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고 비록 표현은 점잖게 했지만 독.불관계가 더이상 전같지 않다는 인식에는 차이가 없었다.

냉전시절 양국관계를 유지시켜준 초석은 프랑스의 핵무기(A)와 독일의 마르크화(D)로 대표되는 이른바'A-D균형'이었다.그러나 냉전종식과 독일통일로 그 균형이 허물어졌다.독일은 더이상 프랑스를 후견인으로 거느릴 필요를 못느끼고 있다.통일로 홀로서기의 발판이 마련되면서 독일은 모든 문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NATO문제만 해도 독일은 프랑스보다 미국편이다.국제경제와 무역에서도 마찬가지다.이로 인해 프랑스가 고립위기에 처해 있다.더구나 프랑스 사회당 정권의 출범으로 양국관계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지난달 13일 프랑스 프와티에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최악의 독.불 정상회담'으로 평가됐다.'이혼'절차의 시작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독.불관계의 악화는 유럽통합의 제자리걸음을 의미한다.실업률이 높아지고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양국간 대립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양국관계의 악화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던 그 순간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역사의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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