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울며 겨자먹기식 UR관세율 협상'외국산 콩기름이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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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의 관세율이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은 품목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수입 콩기름이 바로 그것이다.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과정에서

쌀을 지키려고 대두유 관세를 터무니없이 양보하는 바람에 갈수록 국내 관련업계가 큰 피해를 보고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흔히 먹는 식용유(大豆油)에 올해 적용되고 있는 수입관세율은 7.92%.미국의 20.8%,일본의 25.4%와는 비교가 되지않을 만큼 낮다.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양허관세율도 22.6%나 된다.

이렇게 된 사연은 뭘까.지난 93년 12월 허신행(許信行)당시 농림수산부장관을 비롯한 한국 협상팀은 제네바에서 미국과 막바지 농산물협상을 벌였다.우리 협상팀은 쌀의 최소시장 접근물량을 미국측 요구보다 줄이는

대신 다른 30개 농산물 품목의 관세율 인하계획은 미국측 주장을 대폭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대두유 관세율의 경우 95년 8.64%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내려 2004년에는 5.4%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정부가 WTO 최종협상을 거쳐 확정한 대두유 양허관세율은 95년 27.5%에서 97년 22.6%,2000년 15.2%를 거쳐 2004년에 5.4%를 맞추도록 돼있다.미국과 합의한 관세율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두유 외에도 밀.포도.감자.대두박.배합사료등 28개의 관세율이 이처럼 WTO 양허관세율보다 불리하지만 합의는 합의인 만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협상에 관여했던 농림부 관계자는“미국의 공세에 워낙 다급한 상황이다보니 농민에게 영향이 크지않은 품목은 깊은 검토없이 양보하게 됐다”며 잘못된 협상 결과임을 시인했다.

관세율이 낮다보니 수입품이 밀려드는 것은 당연하다.94년 3만4천정도였던 대두유 수입량이 지난해에는 6만으로 늘었고 국내시장 점유율도 30%를 넘었다.

가격도 18ℓ짜리가 국산 대두유는 2만2천~2만3천원이나 수입 대두유는 1만9천~2만원으로 10%이상 싸다.

신동방.제일제당등 국내 대두유 생산업체들은 저가 수입 대두유의 공세를 견디지 못해 95년 8월 무역위원회에 산업피해조사 신청을 냈다.무역위는 96년 1월 산업피해 판정을 내리고 재정경제원에 WTO 양허관세율 범위내에서 관세율을 인상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관세율 인상조치는 1년반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미국이 합의를 해줘야 하는데 협상에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4월 서울서 열린 한.미 통상실무회의에서도 우리측은 대두유 관세율 인상문제를 거론했으나 미국측은 자국내 업계반대등을 들어 간단히 거절했다.

업계는 불만이 많다.김진일(金鎭一)한국대두가공협회 부회장은 “우리 정부가 산업피해구제 차원에서 대두유 관세율을 일방적으로 올리는등 적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미(在美)통상전문가인 김진희(金珍喜)변호사는“WTO협정에서도 긴급 수입제한등 산업피해 구제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대두유 관세율인상이 UR 합의사항에 위배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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