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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 박희순 “이번엔 상위 1% 조폭 역…있는 척,잘난 척 실컷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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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스스로 “뛰어나지 않은 외모”라고 겸손해하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무섭게 돌변하는 박희순의 얼굴은 분명 ‘뛰어난 외모’ 이상이다. [최승식 기자]

 조폭 역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조폭의 추억’ 때문이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마주친 조폭’같은 사연 때문이 아니라, 두 편의 영화에 얽힌 기억 탓이었다. “영화란 게 이렇게 찍는 거구나”를 알게 해주긴 했지만 완성도에서 씁쓸함을 느꼈던 ‘보스상륙작전(2002년)’, “정말 센 조폭 역을 한 번 해버리면 다시는 안 들어오겠지”싶어 했는데 오히려 “거참 잘한다”며 조폭 역이 쇄도했던 ‘가족’(2004년)이 원인제공자다. “들어온 조폭 역을 다 했으면 집을 샀을 것”이라는 농담에서 얼마나 조폭 역과 재회하고 싶지 않았는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또 조폭 연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12일 개봉하는 범죄물 ‘작전’의 박희순(39) 얘기다.

그가 연기한 황종구는 ‘안산 독가스파’를 이끌던 전설적 조폭. 이제는 ‘대한민국 1%’의 삶을 살고자 DGS(독가스의 이니셜)홀딩스라는 투자사를 차려 주식 작전에 뛰어든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싫어 주식에 뛰어들었다 졸지에 종구의 앞잡이가 된 현수(박용하), 작전에 자금책으로 참여한 상류층 자산관리자 서연(김민정), 도덕심 빵점의 엘리트 출신 증권맨이자 작전의 브레인 민형(김무열)이 그와 더불어 속고 속이는 첨예한 복마전을 연출한다.

종구는 ‘돈이 사람을 말해준다’는 천민자본주의를 집약해 보여주는 인물이다. “조폭의 냄새를 풍기기보다는 우아한 척, 품위있는 척 하는 ‘척’에 무게를 두려 했어요. 있는 척, 잘난 척, 아는 척은 다 한 것 같아요. 손동작도 중간중간 많이 넣고요. ”

조폭 역이 싫어 출연을 꺼렸지만 어쩌랴, 박희순의 몸에 너무나 잘 맞는 옷인 것을. ‘작전’에는 만만치 않은 양의 욕설과, 불발될 위험이 다분한 조폭코미디적 코드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날렵하게 빠진 오락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 1번으로 그의 절대 오버하지 않는 조폭 연기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매순간 종구의 단골 대사인 “오케이, 거기까지”처럼 박희순은 ‘딱 거기까지’ 절제하면서도 폭소를 이끌어내는 희귀한 재능을 과시했다. “박희순만 나오면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는 게 시사회 풍경이란다.

“조폭 역할이라는 점만 빼면 ‘작전’의 미덕은 분명했죠.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주식이라는 소재의 참신함, 주식을 통해 정당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한 탕’만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얘기하는 용기가 마음에 들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

올해로 한국 나이 마흔. 2001년 데뷔 후 충무로에서 본격적으로 뜬 건 지난해 ‘세븐 데이즈’의 형사로 주요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휩쓸면서이니, 그의 이름 앞에 ‘스타’라는 말을 달긴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아직도 개그맨 박휘순과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다(물론 이름만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덧 연기력에서 설경구·송강호·김윤석 등에 이어 거론되는 충무로의 차세대 우량주로 야금야금 성장했다. 원래 ‘큰 거 한 방’을 갈구하는 성격이 아니니 급할 것도 없다. 1990년 입단해 10여 년을 생활한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 시절 연출가 오태석씨의 가르침 덕이다.

“그때 조금만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준비가 소홀하다 싶으면 다음 날로 배역이 없어지기가 일쑤였어요. 공연 뒷풀이는 노래와 퍼포먼스 등 자신의 끼를 남김없이 보여줘야 하는 살아있는 오디션이었고요.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그때 몸으로 깨달았죠.” 그래도 얼마 전 암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 중 둘은 이뤄드렸다. 상 받는 것과 TV 출연(1월 29일 KBS ‘해피투게더’)이다. 하나 더 남았다. CF 출연이다. 그는 “사기꾼 역인데 에이…”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대박 노리다 쪽박 찰 수도 있다”는 교훈적 메시지의 영화 덕분에 공익광고를 찍게 될 지도. 

기선민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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