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코막힘, 키도 덜 자라게 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잠을 잘 때 코를 심하게 골고, 감기에도 잘 걸린다고 호소하며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은 김모(10)군. 한눈에 봐도 앞니가 바깥쪽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아이가 평소 산만하고 짜증을 잘 내 부모와 마찰도 심하고, 학교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불만을 쏟아 냈다.

이는 구호흡(입으로 호흡)을 하는 어린이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최근 구호흡 어린이가 크게 늘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급증한 탓이다. 여기에 축농증과 아데노이드 비대증까지 포함하면 구호흡을 하는 어린이는 10명 중 한두 명꼴은 될 것이라는 게 전문의들의 지적이다.

심하면 뻐드렁니·충치 생길 수도

사람은 원래 코로 숨 쉬도록 ‘디자인’돼 있다. 폐에 적정 온도와 습도, 맑고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코의 주요 기능은 외부 공기를 폐에 알맞은 공기로 바꿔 주는 것이다. 하나이비인후과 이상덕 원장은 “코에는 무수히 많은 모세혈관이 있어 차갑거나 뜨거운 공기가 콧속을 지나면서 짧은 시간 내에 섭씨 30~32도, 습도 75~85%의 공기로 바뀐다”고 말했다.

코의 또 다른 기능은 공기 정화다. 코털은 이중 차단막으로 돼 있다. 굵은 코털은 큰 덩어리 입자를 걸러 내고, 가는 섬모는 작은 입자와 세균을 잡아낸다. 여기에 코 점막에서 분비되는 산도(PH) 7의 점액이 끈끈이 역할을 하며 코털의 기능을 도와준다.

코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입으로 호흡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기관지와 폐에 품질 좋은 공기를 제공하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침투해 감기가 잦고,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 가능성도 높아진다. 여기에 구호흡을 하면 인두와 편도가 건조해져 세균이 쉽게 염증을 일으킨다.

둘째는 구강의 변화. 대표적인 것이 윗니의 배열이 앞으로 나오는 돌출입(뻐드렁니)이다. 경희대 치대 구강내과 홍정표 교수는 “구호흡을 하면 입술 주변의 구륜근이 열려 있어 식사를 할 때, 그리고 수면 중에 혀가 치아를 밀어내는 힘을 막지 못한다”며 “앞니가 나는 6세에서 10세 사이에 치아 돌출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입안에서 세정 작용을 하는 침이 항상 말라 있어 충치와 구내염이 잘 생긴다.

셋째,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숙면을 취할 때 주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이 산소 부족으로 충분히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뇌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학습력과 집중력이 뒤처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알레르기 전문 영동한의원 김남선 원장은 구호흡을 하는 6∼18세 남녀 학생 1312명을 조사해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동양의학회에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가장 많은 50.3%(660명)가 성장 부진을 겪고 있었고 정서불안·학습부진·산만 증상이 30.2%(396명)로 나타났다. 또 치아 부정교합이 5.5%(72명), 주걱턱 2.4%(32명), 아데노이드형 얼굴도 1%(13명) 있었다. 눈 주위가 검게 보이는 다크서클도 2.2%(29명)에 이르렀다.

김남선 원장은 “코가 막혀 호흡이 불편하면 성격이 예민해져 신경질적이고 짜증이 많아진다”며 “이로 인해 교우 관계와 학습 등 학교 생활의 적응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가장 흔한 원인은 역시 코 질환이다. 이상덕 원장은 “어린이는 코 점막이 붓는 알레르기 비염과 비후성 비염이, 중·고생은 코뼈가 휜 비중격만곡증이나 축농증이 많다”고 말했다.

목 질환으로는 아데노이드가 주요 원인이다. 아데노이드는 혀 뒤쪽에서 기관지를 보호하는 인두 편도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상태를 말한다. 보통 3∼4세부터 나타나 14∼15세에 없어지는데 비정상적으로 큰 경우 코의 숨길을 막아 입으로 호흡하게 된다. 또 언어 표현이 또렷하지 않고 코를 골아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성격 예민해지고 짜증도 늘어

아이가 구호흡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평소 입이 반쯤 열려 있는지, 또 입을 벌리고 자는지를 관찰하면 된다. 이런 아이들은 늘 입이 말라 있고, 아침에 일어나 목이 따갑다고 호소한다.

구호흡이 많이 진행됐다면 아랫입술이 두툼하거나 앞니가 튀어나오고, 입을 다물면 아래턱이 동그랗게 되는 특징이 있다.

진단과 치료는 서두를수록 좋다. 가장 흔한 알레르기 비염은 양방과 한방 치료가 있다. 양방에선 항알레르기 약을 복용케 하고, 국소용 스테로이드를 하루 한 차례 코 점막에 뿌려 준다. 부작용은 거의 없다.

한방에서 비염에 쓰이는 대표적인 약물은 마황·백작약·오미자 등을 주재료로 하는 소청룡탕이다. 마황은 항알레르기 작용을, 작약은 소염·이뇨 작용, 오미자는 기침과 체력 증강 효과가 있다. 김남선 원장은 “여기에 호흡기와 소화 기능을 좋게 하는 소건중탕과 면역력을 높이는 녹용 등을 추가한다”고 말했다. 증상이 심하면 약침과 저출력 레이저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데노이드와 비중격만곡증은 수술이 최선의 방법이다. 아데노이드는 6∼7세, 몸무게 25∼30㎏이 될 때까지 크기가 줄어들지 않을 때 시행한다. 비중격만곡증은 콧속 공간을 좌우로 나누는 칸막이 뼈가 휜 것. 이상덕 원장은 “코뼈가 휘면 숨쉬기뿐 아니라 염증이 계속 재발해 비후성 비염이나 축농증으로 고생한다”고 말했다. 도구를 콧속으로 집어넣어 휜 연골과 뼈를 펴거나 자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만성비후성 비염은 점막에 염증이 생겨 코 안쪽에 콧살이 자라는 질환. 초기에는 점막수축제를 쓰지만 만성화하면 레이저나 회전신 분쇄기로 잘라 내야 한다.

고종관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