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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선수범, 외국어 실력이 호텔리어 장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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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송문홍씨가 호텔 손님이 타고 온 자동차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30일 남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남 진주 동방호텔 입구. 검은색 정장차림에 단정하게 빚어 넘긴 머리, 금테 안경을 낀 노신사가 벨 데스크에 서 있다가 승용차가 들어오자 달려가 차문을 열고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순간 차에서 내리려던 고객은 노신사의 응대에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고맙습니다”라고 답례를 했다.

이 노신사는 이 호텔 송문홍 총지배인이다. 1934년생이니 75세다. 한국관광호텔&리조트경영인협회의 조사결과, 호텔리어(호텔 근무자) 가운데 현장을 뛰는 총지배인으로는 송씨가 가장 나이가 많다.(현장을 뛰지 않는 임원으로는 부산 파라곤 호텔 배종권 상무겸 총지배인이 76세로 최고령이다)

송씨는 76년 6월 부산 뉴동래관광호텔을 시작으로 총 지배인만 33년째다. 평생 호텔리어로 살다 보니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회창·노무현·이명박 등 역대 대선 후보들과 모두 악수를 해봤다.고객을 대하는 자세가 버릇이 돼 자식(2남1녀)과 부인에게도 존댓말을 쓸 정도다. 2007년 말 동방호텔 총지배인에서 퇴직했으나, 1년을 쉰 뒤 올 초 복귀했다. 그가 떠난 뒤 구심점이 없어져 고객에 대한 서비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경영주가 다시 불러 들인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지구촌 사람 만날 수 있는 게 호텔리어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지요. 전세계에 다니며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늙는 줄을 몰라요. 다시 부르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손님이 몰리지 않는 낮에는 호텔 구석구석에 다니며 점검하고 직원 100여 명의 말과 몸가짐을 꼼꼼하게 살핀다. 고칠 점이 보이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용히 불러 교육한다. 직원들은 무엇보다 그의 솔선수범에 놀란다. 카펫이 더러워진 것을 직접 걸레를 들어 닦고, 로비에 나가 고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일한 인연으로 호텔리어가 됐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50년 가족과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미군 55 보급창 야전진료소에서 ‘하우스 보이’ 일을 했다.

“전쟁 통에 청소와 심부름을 하면서 배고픔과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어요.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몸이 고단했지만 저녁에는 영어공부를 했다. 좋은 서비스를 하려면 의사소통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야간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영어공부에 매달린 끝에 미군과 대화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영어 실력을 쌓았다.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담임 교사의 권유로 당시 부산 영도에 피난와 있던 연세 초급대에 입학했다가 종전과 함께 대학이 서울로 돌아가는 바람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그 뒤 부산 온천시장에서 식료품가게를 낸 부모를 돕다가 근처에 있던 요정에 임시직으로 일하게 됐다. 그 곳은 온천장의 명물로 고관대작들이 많이 찾던 곳이었다. 손님으로 온 미군과 지배인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게 됐는데, 이를 본 주인이 그를 정식직원으로 채용했다.

“2년여 동안 요정에서 일하면서 고객을 대하는 예의·몸가짐 등 손님을 대하는 기본 자세를 배울 수 있었어요. 호텔학교를 다닌 셈이죠.”

64년 요정 앞에 동래관광호텔이 들어섰다. 화려한 분위기에 반한 그는 지배인에게 “호텔에 취직시켜달라”고 졸랐다. 지배인의 소개로 처음 입사한 호텔이 해운대의 미진장 관광호텔이었다. 도어맨·접시 닦기 등으로 10년쯤 일하던 그는 70년 6월 부산 뉴동래관광호텔의 프런트 주임으로 옮겼다.

그런데 76년 6월 투숙객 분신 자살사건이 발생해 소방차가 뿌린 물로 물바다가 되고 투숙객이 피신하는 등 호텔은 엉망이 됐다. 광산을 경영하느라 강원도에 있던 주인에게 연락했으나 “당장 갈 수 없으니 알아서 해달라”는 답변을 듣고 기를 쓰고 수습한 끝에 사고 당일 저녁부터 정상영업을 할 수 있었다. 이튿날 호텔로 돌아온 주인은 “대단한 일을 했다”며 그를 총지배인으로 발령냈다. 호텔업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다.

85년 진주에 호텔을 짓던 동방호텔 창업주는 이런 그를 스카우트해갔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성화봉송단이 묵을 숙소를 마련하느라 공기를 단축하는 일을 지휘하게 됐다. 공사판에서 판자를 깔고 잠을 자면서 공사감독을 하며 3년만인 87년 7월 호텔을 준공했다.

경영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잠시 다른 호텔로 옮겼던 그는 91년 다시 진주 동방호텔로 돌아왔다. 현 동방호텔 경영주(박계완·83·흥한건설 회장)의 호텔사업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경영주와 함께 노력한 덕택에 지방호텔로서는 드물게 객실 가동률이 70%에 이른다. 경남도 최우수관광업체로 선정(2001년)되기도 했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호텔리어로 꿋꿋하게 현장을 지키는 그에게 한국 호텔지배인협회는 98년 ‘영원한 호텔맨 상’을 수여했다. 2005년 9월 32회 관광의 날에는 국무총리상도 받았다. 그는 “이 나이에도 계속 고객들을 모실 수 있어 행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진주=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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