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빅뱅>3. 달라지는 돈흐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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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융산업의 제도개혁은 으레 금융시장의 판도까지 바꿔놓게 마련이다.

따라서 빅뱅의 효과는 당장 돈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것이 뻔하다.기업들의 자금조달 경로에는 어떤 변화를 초래할까. 해외금융을 쉽게하고,산업은행등에 금융채 발행을 허용하고, 증권사들의 지급보증 업무를 폐지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요인들이다.

여기에 더해 동일계열 여신한도제를 도입하고 특정은행의 자기자본 45%이상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할 경우 대기업들의 자금사정에 당장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대체로 기업자금 사정에 주름살이 예상된다.당장은 빚많은 대기업들이 고민에 빠지게 되어 있다.재정경제원에 따르면 96년말 현재 45%한도를 초과해 빌려쓰고 있는 그룹이 14개나 된다.한도를 맞추기까지 3년 유예기간을 준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상당부분을 갚아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수 없다.

대림그룹의 신현국 부장은“웬만한 기업의 자금운영은 어려워질 것”이라며“은행권에서 대출을 축소하면 기업들은 종금사등 제2금융권으로 몰릴 수 밖에 없어 자금흐름이 더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증권사의 회사채 지급 보증업무를 98년 4월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기업에 주름살을 더한다.현재 10조9천억원에 달하는 증권사 지급보증액을 은행이나 다른 보증기관이 떠맡아야 된다.

그러나 그동안 은행에서 보증을 받지 못하거나 무보증채 발행이 어려운 하위 그룹이나 중소업체들이 주로 증권사에서 지급보증을 받아온 것을 감안한다면 이 기업들이 회사채 만기가 돌아왔을 때 새로 지급보증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동일계열여신 한도제는 대출금뿐 아니라 지급보증액까지 포함하도록 돼있어 더욱 문제가 크다.(대우증권 하상주 조사2팀장) 은행이 3년짜리 금융채를 발행하게 한 것도 기업들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 대기업 자금담당 임원은“금융채와 회사채는 경쟁관계에 서겠지만 투자자들이 회사채보다 안정성이 높은 금융채에 몰릴 경우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도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회사채발행이나 기업어음(CP)발행등 직접금융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게끔 금융시장 여건이 마련된 측면은 있다.이를테면 전국적인 점포망을 가진 증권사에서 CP를 취급할수 있게 된 것이 그 예다.

LG건설의 임창희 자금부장은 “제도가 정착만 되면 장기적으론 지금보다 자금조달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또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한 규제를 정부가 대폭 완화하겠다고 약속한 대목을 크게 반기고 있다.

재경원은 우선 올 연말에 결정할 내년도 국산시설재 구입용 현금차관 허용한도를 올해 20억달러에서 대폭 올려줄 방침이다.또 대기업에 대한 외화증권 발행금액 한도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해외증권 발행과 해외 직접투자도 자유화됐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중소업계에서는“과연 국내에서 돈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제대로 구할수 있겠느냐”며 해외금융 이용 확대책은 당장 돈가뭄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는 별다른 희소식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서민금융기관쪽에서의 활성화가 기대되는데, 이 분야가 활기를 찾을 경우 영세기업들의 자금조달 경로에도 어느정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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