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리메이크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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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25)의 리메이크 앨범 '제주도의 푸른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성시경의 잔잔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1980~90년대 애창곡을 담아 향수를 자극한 앨범이다. 게다가 성시경의 인간적인 면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자작 수필과 화보도 덤으로 붙어 있다. 이수영이 지난 1월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클래식'이후 최대의 수확을 거둘 리메이크 앨범이 될 듯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리메이크는 아무리 찬란한 수사를 붙이더라도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음악이다. 창작의 열정과 고뇌의 산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음악 전문지 '핫뮤직'의 조성진 편집장의 지적처럼 "최근 리메이크의 범람은 창작의 빈곤을 말해준다." 물론 음반 시장의 불황이라는 현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리메이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첫 앨범 '엠 아이 블루?'를 낸 재즈 보컬 남예지도 리메이크 곡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타이틀로 내세웠다. "귀에 익은 곡을 내놓아야 인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음악적 고집을 접고 대중과 타협했다"는 게 기획사측 설명이다. 다른 창작곡들이 그녀의 호소력있는 목소리를 더 제대로 살려주고 있는데도.

리메이크라고 다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현우는 얼마 전 9집을 내면서 "9집쯤 내니까 이제 곡 해석 능력이 생긴 것 같다"며 리메이크 곡을 하나 넣었다. 적어도 신곡처럼 들리는 20여년 전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곡을 끄집어내 세상에 알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다시 성시경으로 돌아가자. 그는 이번 앨범 속지에 쓴 수필에서 "인기 덕분에 노래를 부를 기회는 주어졌지만 음악을 공부하고 사랑할 시간을 빼앗겼다"고 털어놨다. 묘하게도 이번 앨범은 그런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귀에 익은 리메이크 앨범으로 잠깐 재미를 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으려면 어렵더라도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잘 팔리는 리메이크보다 팔리지 않는 창작물이 대중 음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성시경표 노래방 레퍼토리보다는 그만의 노래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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