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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고함(孤喊)] 오바마의 세계경영과 공자의 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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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공자의 초상화. [중앙포토]

  “우리가 당면한 도전들은 아주 새로운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도전들을 해결해나가는 데 필요한 도구들도 새로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전들을 대면하여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데 우리가 의존해야만 할 가치들, 근면과 정직, 용기와 페어플레이, 관용과 호기심, 자기헌신과 애국, 이런 것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가치들이야말로 진실한 것입니다.”

오바마의 회귀, 인 사상과 닿아 #세계는 ‘인’ 지향하는데 우린 …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로 검은 먹구름이 대한민국 하늘을 덮고 있던 그 다음 날 새벽, 변화와 담대한 희망을 말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합중국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200만 인파를 향해 자유롭게 시선을 돌려가며 취임연설의 언어를 거침없이 토로하였다.

물론 엄밀하게 선정된 단어들만이 그의 혀로부터 울려 퍼졌겠지만, 오바마는 취임연설을 세기적 명문장을 남긴다는 스트레스 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자유로운 마당으로 생각한 것 같다. 취임연설 자체를 미 대통령이라는 권위로운 직책에 대한 개념을 전환시키는 한 계기로 삼은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의 취임연설을 들으며 당혹스럽게 생각했지만, 그의 입에서 뱉어진 단어들을 곰곰이 씹어보면서 그 인간성의 깊이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오바마는 미국이 당면한 위기 상황은 매우 리얼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는 사상적 틀로서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이라는 전통적 가치 이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진보나 선동적인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미국이 당면한 도전을 해결하는 성공의 열쇠는 새로운 도구나 수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로의 회귀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 기본적인 가치란 나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에의 헌신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발적 의지(willingness)이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고, 용기 있고, 정당하게 행동하며, 다양한 신념을 포용하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지하며, 헌신할 줄 알고, 나라를 사랑하는 삶의 가치, 이런 것들이야말로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말한다. 물론 정부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고 정부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기댈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것은 미국인들의 신념과 결단이다. 그 신념과 결단의 예로서 그가 들고 있는 사례들은 매우 감동적이다.

“제방이 무너졌을 때 집 잃은 자들을 지체 없이 내 집으로 들여 보호하는 친절, 친구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방치하지 않고 내 작업 시간을 깎아 같이 고난의 시간들을 헤쳐나가는 공장 일꾼들의 무아(無我)의 보살핌, 화염과 연기로 가득 찬 계단을 뛰어들어 가는 소방관들의 용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헌신적 사랑, 이것들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나는 오바마의 생각 속에서 동방적 사유의 한 원형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근원적인 가치에로 회귀하는 삶의 자세야말로 오히려 인간의 진보를 꾀하는 획기적 첩경이라는 생각, 그것은 바로 공자(孔子)의 인(仁)의 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동방적 사유의 깊이가, 신의 섭리(Providence)를 우선하는 묵시론적 환상과 결합된 맹목적 진보의 관념(Idea of Progress)에 의하여 묵살당하여 왔던 것이다. 오바마는 말한다.

“우리의 역사를 통하여 조용한 진보의 물결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참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기본적인 진실에로의 회귀(a return to these truths)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책임의 시대(a new era of responsibility)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공자의 인(仁)이란 무엇인가?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인(仁)이다. 충(忠)이니 서(恕)니 효(孝)니 하는 따위의 덕목은 공자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공자를 빌려 공문(孔門)의 제자들이 유포시킨 국소적 개념들이다. 『논어』 20편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주요한 테마는 역시 인(仁)이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자는 인이라는 덕목을 일개인에게 쉽게 허여(許與)하지 않는다. “그가 인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는 식의 논평은 거의 공자의 입버릇처럼 반복된다.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 인이라는 가치는 무엇인가?

재미있게도 식물의 씨를 나타내는 우리의 말에 인(仁)이 붙어 있다. 의이인(薏苡仁), 행인(杏仁), 도인(桃仁), 마자인(麻子仁), 과루인(瓜蔞仁), 호마인(胡麻仁) 등. 그런데 그 반대말인 불인(不仁)은 우리 신체의 ‘마비현상’을 나타낸다. 무감각 상태인 것이다. 씨는 전 우주의 기운을 감지하여 싹이 틀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예수도, 가장 작은 겨자씨가 싹터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거대하게 자라 공중의 새들이 깃든다고 말한다(막 4:30~32). 인이란 도덕적인 덕목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며, 상황 상황에 따라 전 우주의 기를 감지할 줄 아는 심미적 감수성(Aesthetic Sensibility)이다.

공자는 말한다. “인한 사람들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기가 달성코자 하면 남도 달성케 해준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논어 6-28).” 오바마는 말한다. “미국의 군사력만으로 미국이 보호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강하다고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세계는 인(仁)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불인(不仁)을 지향하고 있는 듯한 서글픔이 우리 마음에 서린다. 용산 철거민 사태도 그러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하려는 느낌만을 던져주는 현 정부의 불인한 자세 또한 그러하다. 세계가 맹목적 진보를 지양하고 공동의 선(善)을 생각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너무 구시대적 사고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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