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양희은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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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 서울 정동골목은 저녁7시가 좀 지나면 정동극장과 정동 문화예술극장을 구분못해 음악회 표를 손에 들고 길을 묻는 중년여성들의 물결이 연이었다.12일부터 15일까지 정동 문화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양희은 콘서트'우리는 지금 한계령을 넘는다'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나이들수록 노래는 어설픈 메시지의 전달보다 대중들의 아픔과 슬픔을 만져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돼요”하는 양희은씨의 콘서트는 매회 만원을 기록해 지난 금요일에도 1,2층 5백여석을 가득 채우고 50석이 넘는 보조의자를 놨어도 자리가 모자라 되돌아가는 사람이 적잖았다.

몇달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가수가 부지기수인 시대에 4반세기 세월을 넘는 그의 노래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타고난 맑고 높은 목소리에 꾸밈없는 창법이 주는 서정성과 시대정신이 반영된 가사때문'이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70,80년대에 이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특별한 의미,즉 그 시대 젊은이 모두가 나누었던'시대의 무게'를 되돌아보며 흘러간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기게 하는 때문인 것도 같다.

그의 팬들은 또 그가 일찍이 여학교 시절에 맞은 부모의 이혼,소녀 가장으로 힘들게 보낸 대학생활,그의 노래'아침이슬'등이 공연금지당한 아픔,해외를 1년여나 떠돈 방랑,암과의 투병,결혼과 해외이주,그리고 93년의 귀국,그런 삶의 체험들이 그를 성숙하게 했고 그의 노래를 풍부하고 정감있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양희은씨는 이날 개량한복 같은 검은 바지와 윗옷의 편안한 차림으로 김민기 작곡의'아름다운 사람'으로 시작해'작은 연못''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내 나이 마흔살에는'등을 노래했다.청중들은 전자음은 되도록 배제한 반주와 노래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고 조금 템포가 빠른 곡에서는 손뼉을 쳐 박자를 맞춰주었다.

'비에 젖은 흙냄새같은,그리운 분위기의 콘서트를 하고 싶었다'는 양희은씨는“풀어진 기분으로 노래하고 싶은데 무대에 서면 늘 긴장이 돼요.연습할 때의 3분의1만 실력이 발휘돼도 좋은 노래가 될텐데…”하며 프로 노래꾼으로서의 아쉬움을 표했다.노래하는 사람이나 청중 사이에 같은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이제 함께'한계령'에 이른 듯한 사람들끼리의'따뜻함'이 느껴지는 음악회였다. 박금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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