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우무대 '칠수와 만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시대는 간데없고 원작만 남아 연우무대'칠수와 만수' '연극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참여연극'의 관점에서 이 말은 꽤 호소력이 있다.

올해로 성년(창단 20년)이 된 극단 연우무대는 싫든 좋든,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다분히 참여연극적인 팀컬러를 갖고 있다.요동치는 시대의 격랑에 맞서 창작극을 발굴.육성하려던 연우의 숙명이 만든 자연스런 색깔이다.

그러나 연우는 90년대 들어 좌표를 잃었다.민주화 이후를 대비하지 못한 전략적인 실수. 아직까지도 지향점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듯한 연우의 딜레마는 참여연극단체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현재 예술의전당'우리시대의 연극'시리즈의 하나로 자유소극장에서 공연중인'칠수와 만수'(오종우.이상우 작,이상우 연출)는 진퇴양난에 빠진 연우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해 안타깝다.

각각 기지촌과 빈농 출신인 칠수(유오성)와 만수(유연수)가 상경해 고층빌딩 광고판 여배우의'젖가슴'을 그리면서 겪는 삶의 비애.두사람은 공중에 높이 매달린 절대고독의 공간에서 심심풀이로 춤추며 노래하다 사회에 항거하는 동반자살자로 오인돼 투신자살한다.이 작품은 한창 민주화 열망이 들끓던 86년 초연돼 4만7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내용과 시대가 맞아떨어진 합작품인 셈이다.그로부터 오랜만에 다시 본 이번 무대는'시대는 간데 없고 원작만 남아있는'회고담 그 이상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재공연을 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맞게 재창조돼야 할 에피소드의 부재.칠수와 만수를 통해 발언해야 할 바로 오늘의 당면문제가 무궁무진해 보이는데도 이번 무대는 다 비켜갔다.그 싱싱하던 연우가 겨우 20년만에 조로(早老)한 것인가. 아직도 관객들은 이 작품의 냉소적 은유를 보며 웃고 박수를 보낸다.그러나 연우는 그 웃음과 환호가 몰입과 공감에서 나오기보다 낭패한 쓴웃음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80년대와 전혀 다른 양태로 급변하고 있는 90년대에'참여연극'의 시대적 소명이 많이 약화된 것은 틀림없다.연우가 고민하는 것도 이점일 것이다.그러나 기대가 컸던 '칠수와 만수'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한 연우의 앞날을 제시하지 못했음은 못내 아쉽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