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21세기 지도자의 자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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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새 TV나 신문을 보면 매일 두명 이상의 용들이 나타난다.아직도 여당의 경우 후보가 확정되지 않아 당분간 용들의 행진은 계속될 모양이다.빈번한 용들의 출연은 국민에게 후보감들의 자질을 평가할 기회를 미리 줌으로써 당원들이 일반 국민의 정서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자기들의 구미에 맞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후보 선출전 이상 과열은 필요 이상의 용들을 양산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그렇다면 매스컴에 의한 검증은 각당 후보들이 결정된 후에 이들을 중심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21세기를 맞는 민주주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정치를 가장 간결하게 정의한 것이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의 한 구절이다.민주정치는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이것은 민주정치에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그렇지 않다.이것은 민주주의 리더십은 강압과 처벌에 의한 리더십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해 국민을 파고드는 그러한 리더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21세기를 이끌어갈 민주적 지도자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깊은 경륜,강한 신념,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21세기 지도자는 국가안보와 남북문제,정치안정과 부패척결,그리고 선진경제 진입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방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지금 우리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경기 후퇴와 21세기를 향한 경제구조 조정이 당면과제로 겹치면서 경제에 어려움이 크다.그렇지만 해외에서의 우리경제 미래에 대한 평가는 우리보다 훨씬 낙관적이다.그러나 그들은 한반도의 안보문제,낙후된 정치와 선거제도가 우리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지도자는 먼저 남북문제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북한은 이미 제조업과 농업 기반을 상실한지 오래다.북한 농업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기근은 앞으로도 연례행사가 될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엄청난 군비를 쏟아부으면서 군사적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북한의 경제적 파탄은 우리에게 지금도,앞으로도 커다란 짐이

될 것인데 북한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고 어느 정도 경제적 부담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21세기

우리 지도자는 국민에게 남북문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남북문제 해결은 남북당사자뿐만 아니라 동북아 강대국들과의 관계에도

달려 있다.새로이 미국.중국.일본이 각축을 벌이는 동북아에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동북아 집단안보체제의 구축과 참여는 21세기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 중 하나다.

정치 안정과 부패척결은 지금과 같이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는

선거제도가 유지되는한 결코 달성될 수 없다.정치제도 개혁이 없는한

정경유착의 고리는 결코 끊기지 않을 것이며 정치불안은 우리경제의 발목을

계속 잡을 것이다.또한 지금과 같이 대통령.국회의원,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엇갈리면서 실시되는 낭비도

줄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21세기 선진경제에 진입하려면 우리의 기본적 사고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과거의

경제발전 전략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우리 현실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글로벌 시대 국제경쟁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경제의 생산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특히 교육.노동.금융분야,그리고 농업과

국토개발 분야에서 새로운 국제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규제를 풀고,제도개혁과 조직개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분야에서는 기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지도자가 미래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해나가면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미래에 부합하는 제도개혁과 조직개편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인준 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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