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주인 찾기 장기화 … 하이닉스·현대건설 매각도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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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연말까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끝내겠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지난해 7월 24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인생의 가장 큰 승부수를 대우조선에 걸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이 지난해 11월 17일 사내 정보망을 통해 직원들에게 전한 말이다.

팔겠다는 민 행장의 의욕, 사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 대우조선 매각에 대한 당사자들의 주관은 그처럼 분명했었다. 그래서 다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21일 산은 이사회가 “매각협상 종료”를 선언하면서 두 수장의 장담은 결국 빈말이 되고 말았다. 너무도 급박하게 바뀌어 버린 경제여건 탓이다. 원인이야 어쨌든 산은과 한화에는 매각 불발 자체가 적잖은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우조선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맞물려 언제 다시 새 주인 찾기에 나설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들게 됐다. 하이닉스반도체·현대건설 등의 매각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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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결과=대신증권 전재천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한화가 매각대금의 분할납부를 요구하고, 산은이 이를 거부할 때부터 매각 무산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분할납부 요구는 한화가 인수대금 완납 시점인 3월 30일까지 도저히 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공개한 셈이었다. 따라서 산은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순간부터 서로 결별의 수순을 걸었다는 얘기다. 전 연구위원은 “결과만 놓고 보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던 셈”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그동안 과연 한화가 인수대금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한화가 약 6조원에 대우조선을 사겠다고 양해각서를 체결한 시점은 지난해 11월 14일. 이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에 태풍이 몰아치던 때였다. 굵직한 계열사 매각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한화가 거액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리투자증권 송재학 연구위원은 “한화도 무리했지만 금융위기를 감안하지 않고 자금조달 계획서를 액면 그대로 믿었던 산은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청사진과 맞물려 산은이 첫 매각 대상인 대우조선을 서둘러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달렸다는 지적이다. 송 연구위원은 “매각을 연기했더라면 또 다른 비판이 나왔겠지만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 장기화 불가피=산은은 양자택일의 상태에 직면해 있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서둘러 대우조선의 주인 찾기에 다시 나서느냐, 시장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느냐다. 현재로선 조기 매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전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에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대우조선의 경우 방위산업을 겸하고 있어 해외 매각도 쉽지 않다. 헐값에 세일하기는 더 부담스럽다. 산은 등이 대우조선에 투입한 자금은 3조5000억원이다. 여기에 이자비용과 관리비용을 더하면 원금은 5조원으로 불어난다. 5조원 이하로 팔면 밑지는 셈이다.

따라서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매각을 늦추는 방법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대우조선의 주인 찾기가 시급한 현안이긴 하지만 국내외 경제상황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 경기가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시점까진 매각을 연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경우 향후 2~3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괜찮은 가격에 대우조선을 팔려면 일정 기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의 순조로운 매각을 위해선 노조의 강경 대응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번에 대우조선 노조는 고용 보장 등 4개 항의 조건을 내걸고, 한화에 대해 실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에도 부담=대우조선 홍보실 안욱현 차장은 “이미 2∼3년치 일감을 수주해 놓았기 때문에 매각 불발로 인한 큰 고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우조선에도 유·무형의 불이익이 돌아간다. 우선 대우조선은 이번 매각 과정에서 경쟁 업체들에 속살을 모두 드러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도 입찰에 참여해 대우조선을 면밀히 살펴봤다.

해외투자자나 발주사의 시각이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대우조선은 금융불안이 본격화된 지난해 10월 이후 한 건의 수주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대우조선은 연간 수주 목표액을 지난해 175억 달러에서 올해는 100억 달러로 낮춰 잡았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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