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국립오페라단 '리골레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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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조수미.신영옥에 이어 또 한명의 질다역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5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개막된 국립오페라단의'리골레토'에서 신예 소프라노 김수정은 성악 강국(强國)의 위상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탄탄한 기본기와 발성에 선이 굵은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 김수정은 1막의 아리아'그리운 이름이여'에서 리릭 콜로라투라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풍부하고 여유있는 음악성과 한치의 흔들림 없는 안정감으로 듣는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하게 해주는 저력을 함께 갖추었다.첫 국내 무대였지만 해외 오페라 무대에서 땀흘려온 값진 경험 때문에 이미 신인(新人)에서 프로의 세계로 진입해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일순간 청중을 경악시키는'비법'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텍스트에 충실한 음악적인 해석에다 고음(高音)으로 갈수록 힘과 빛을 더해가는 탄력있는 목소리로 서서히 분위기를 장악해 나갔다.음색이나 톤으로 보자면 오히려 홍혜경에 가까운 계열의 소프라노다.콜로라투라의 기교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음악적인 깊이로 청중들은 오랜만에 해갈(解渴)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수정과 환상의 듀오를 선보인 리골레토역의 바리톤 고성현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절정기에 달한 발성과 무대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익살스러운 광대에서 복수를 결심하는 한 아버지로 변신하는 연기도 나무랄데 없었고 관객을 압도하는 성량과 음악적인 리더십은 국내 최고의 바리톤이라는 찬사에 충분히 값하는 것이었다.

테너 김영환(만토바 공작역)은 귀족적 풍모를 담은 발성,메조소프라노 김현주(맛달레나역)의 실감나는 연기와 깨끗한 중저역의 처리도 돋보였다.일본에서 온 소프라노 아모 아키에는 연기나 표정.음색면에서 가냘픈 질다역에 잘 어울렸고,결정적인 부분에서 화려한 빛깔이 덜한 것만 제외하면 수준급이었다.테너 오마치 사토루는 자신있는 무대연기가 돋보였으나 가끔씩 발성의 초점을 잃은 소리가 노출돼 아쉬웠다.

김덕기 지휘의 코리안심포니는 강약과 템포의 변화로 극적인 분위기를 주도하지는 못했으나 유려한 선율의 흐름을 잘 살려냈다.예산부족 탓인지 무대는 다소 엉성했고 연출상의 색다른 특징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공연은 12일까지 계속된다(평일 오후7시30분,6~8일은 오후4시 개막).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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